지난 10년간 경남 정치지형의 변화
지난 10년간 온전하게 남은 정당은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화인지, 분열인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
경남도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도당조직은 △한나라당(김재경) △민주당(최철국) △자유선진당(이우태) △친박연대(김종상) △민주노동당(이병하) △창조한국당(강재규) △진보신당(이승필) △민주공화당(김군복) 등 8개다.
◇정당, 분화인가 분열인가
자유당·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 등 보수정당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한나라당은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 좌파 척결' 목표를 이뤄냈다. 그러나 대선을 치르면서 불거진 당내 불협화음으로 박근혜 지지세력인 '친박연대'와 갈라선다.
진보정당은 성장했으나 나뉘었다. 1997년 권영길을 대선후보로 냈던 국민승리21을 발판으로 1999년 진보정당 창당발기대회를 거쳐 2000년 민주노동당 깃발을 세운다. 그해 16대 총선에서 13.1% 득표를 했지만 더 팽창하지 못하고 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를 낸다. 그러나 2007년 대선을 거치며 분당사태를 맞는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추구하는 이들은 탈당해 진보신당을 건설했으며, 18대 총선을 각자 치렀다. 민주노동당은 5명을 당선시키는 데 머물렀으며, 진보신당은 최근 울산 북구 재선거에서 이겨 원내정당이 됐다.
◇한나라당 싹쓸이에 균열
2000년 치러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16개 선거구에서 '싹쓸이'했다. 그러나 17대 선거에서 정치지형의 큰 변화를 겪게 된다. 17개 선거구 중 창원 을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이주영 의원을 꺾었다. 열린우리당은 김해 갑·을에서 모두 당선했다. 강고한 한나라당 틀에 변화의 틈이 생긴 것이다.
강삼재 전 의원의 정계은퇴도 큰 사건이었다. 강 의원은 12대 때 최연소 당선을 시작으로 마산에서 내리 당선해 40대에 연속 5선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2001년 안기부자금을 선거자금으로 썼다는 이른바 '안풍 사건'에 휘말리면서 정계은퇴를 했다. 그는 2005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으며, 지난해 자유선진당으로 정치재개를 준비하다 지금은 '야인'으로 살고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 2007년 대선 당시 박근혜 쪽에 섰다가 공천에 탈락한 이들도 있었다. 최구식 의원은 무소속으로 당선했으나 김명주 의원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중진들의 대거 물갈이도 이뤄졌다. 3선 김기춘(거제)·김용갑(밀양·창녕), 4선 이강두(산청·함양·거창), 5선 박희태(남해·하동) 등이다. 15대부터 18대 국회의원 중에서 도의원 출신은 3명(김학송·김명주·김정권)이다.
지난 10년 동안 재선거는 3번 치러졌다. 김정부(마산 을) 전 의원은 2002년 김호일 의원 빈자리를 차고 금배지를 달아 재선했으나 선거법 위반으로 물러나는 전철을 밟았다. 이때 창원에서 떨어졌던 이주영 의원은 '아구할배'라는 이름으로 마산에서 재선, 3선에 성공했다.
지난 10년 동안 선거구도 바뀌었다. 인구가 감소한 곳은 대의정치의 힘도 줄어든 것이다. 15대 때 산청·함양, 거창·합천 선거구는 16대에 함양·거창, 산청·합천으로 바뀌었다. 17대 들어 산청·함양·거창을 하나로 묶고 합천은 의령·함안과 합쳐졌다. 진주는 16대에 한 곳에서 17대에 2곳으로 나뉘었고, 김해는 17대에 2곳으로 분리됐다. 또 창녕은 16대에 밀양과 묶였다.
◇단체장 당적 갈아타기
민선 4기까지 도지사는 모두 한나라당이 차지했다. 김혁규 전 지사는 17대 총선을 앞두고 사퇴하고 열린우리당으로 옮겼다. 당시 김태호 거창군수는 보궐선거에서 도지사로 발돋움한다. 열린우리당 비례 배지를 단 김혁규 전 의원은 한나라당 반발로 국무총리는 못했고 지난해 자유선진당에 붙었다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참여정부 시기에 치러진 2006년 4기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2명(밀양 엄용수·함양 천사령)이 당선했으나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모두 탈당했다. 선거 후 김채용 의령군수, 조영규 함안군수, 김충식 창녕군수, 양동인 거창군수도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끊이지 않는 단체장 비리
민선 4기까지 뇌물이나 선거법 위반, 국회의원 출마를 위한 사직에 따른 재·보궐선거 후유증은 컸다. 2기 때 비리로 중도하차한 김인규 마산시장 대신 자리를 잡은 황철곤 시장은 3선을 채우고 있다. 사천에서는 사망과 선거법 위반으로 시장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3기 때는 창원과 통영에서 선거법 위반에 따른 재선거에서 박완수·진의장 시장이 자리에 올랐다. 당적을 여러 차례 바꿔 2006년 선거 때 한나라당 후보였던 진 시장은 철새비판에 대해 '행복을 물어다주는 철새'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양산과 거제에서도 비리사건에 따른 재·보궐 선거에서 오근섭, 김한겸 시장이 단체장에 올랐다.
4기 때 함안에서는 조영규 군수가 재수 끝에 뽑혔다. 창녕군수는 모래 업자와 연루돼 '김종규-하종근-김충식'으로 바뀌는 선거가 잦아 군민들의 지탄이 거셌다.
하영제 남해군수, 강석진 거창군수는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했는데 지역민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거창에서는 김태호에 이어 강 군수도 갈아타기 사퇴로 보궐선거를 하게 된데 따른 비판여론이 높았다. 당시 남해·거창 모두 무소속이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뽑혔다.
민선 4기 동안 3선을 온전히 채운 단체장은 김병로(진해), 송은복(김해), 이상조(밀양)뿐이다. 송 시장은 태광실업 박연차 정관계로비에 엮여 구속돼 3선의 영광이 퇴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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