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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이

노무현 전대통령 추모열기, 촛불로 타오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한국현대사에 기록될 대사건이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여 당장 앞일을 장담하지 못하지만 대사건임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

스스럼없이 '핵폭탄'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만큼 앞으로 미칠 파문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며 세상을 떠났지만 정치계는 후폭풍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여야를 막론하고 섣부른 판단이나 계획을 피하고 있다. 장례기간에는 슬픔을 달래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데만 몰두하자는 것 같지만 그만큼 앞으로 어떻게 상황이 전개될지 관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앞으로 정국에 미칠 파문, 그중에서도 핵심단어들만 나열해보면 이렇다. 당장에는 '추모와 촛불'로 시작해 6월 임시국회, 한나라당과 민주당, 진보진영과 시민사회, 박연차 정관계로비 사건, 멀리는 1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다.


고개숙여 괴로워하는 조문객 / 경남도민일보


◇숨죽인 정부와 한나라당
노 전 대통령으로 가장 조심스러워 진 쪽은 정부와 한나라당이다. 각 정당이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논평을 내며 애도의 뜻을 밝힌 것과 달리 한나라당은 여론 추이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는 듯하다. 도당 관계자는 "논평 낼 처지는 아니고 동향을 파악 중"이라고 전했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받게 될 타격에 대해 한나라당 관계자는 "걱정되는 것은 동정론, 과거 정권과 정치인 비리에 비춰보면 너무했다는 여론이 퍼지는 것"라며 "국가적 비극을 추모하는 데 동참하고 가장 낮은 자세로 국민여론을 살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정국을 가늠할 분수령이 미디어법, 비정규직법 등 처리를 앞둔 '6월 임시국회'이다.

한나라당은 강경한 안상수 원내 사령탑을 중심으로 한 당직개편을 앞두고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6월 임시국회에서 이들 법안을 무리하게 강행할 수 있을까.

그러나 다음 회기로 처리를 늦추면 계속 밀릴 수도 있고, 연내 처리 못 하면 결국 물 건너간다는 것이 약점이다. 한 관계자는 "문제는 레임덕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정부와 한나라당의 딜레마다.

◇앞길 고민하는 민주당과 친노그룹
민주당, 특히 친노그룹은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분노는 노 전 대통령의 '왼팔'로 불렸던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23일 양산 부산대 병원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신이 원한 결과가 이런 겁니까"로 축약된다.


민주당이라고 해서 꼭 이 정국이 유리한 것은 아니다. 자칫 정부와 한나라당을 공격하고 나서다 죽음을 이용한다는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당사 분향소를 지키는 경남도당 제선수 부위원장은 "마음 같아서는 시내 사람 많이 다니는 곳에 분향소를 세우고 싶다"라며 "민주당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욕할 수는 없다. 물 흐르듯이 국민 원하는 대로 가는 것이 당 지침"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이 민주당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나라당에 맞서는 단일한 민주당이 될지, 지금까지 밀렸던 친노그룹이 뭉치면서 당내 골이 깊어질지 단정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화합이냐 대결이냐다. 한 친노그룹 386인사는 "어떤 식으로든 선이 그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노무현'이 사라진 친노그룹의 중심에 설 인물이다.

봉하마을을 찾은 끝없는 추모객 / 경남도민일보

◇향후 정국의 분수령 6월 임시국회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하정우 사무처장은 "한나라당이 6월에 처리를 못 하면 이명박 정부 국정운영에 타격이 클 것이다. 지난 재보선에 참패했고, 10월에 또 재보선, 내년에 지방선거가 이어진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6월 임시국회 대응이 당내 화합과 분열의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친노그룹은 미디어법 등이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않도록 강경하게 나서야 한다는 쪽이다.

한 관계자는 "'뉴민주당 플랜' 등에 따른 우향우 논쟁이나 임시국회 대응이 미온적이면 내분이 있을 것이고 새로운 당에 대한 논의도 나올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번 검찰의 박연차 정관계로비 사건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측근으로 집중된 데 대해 정가에서는 '영남권 신당' 혹은 '친노신당' 견제라는 설도 나왔었다.

그러나 신당 문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신당은 노 전 대통령이 추구한 지역주의 극복과 국민대통합 신념에 맞지 않는다"라며 "노 전 대통령은 지난 총선 이후에도 그런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이러나저러나 당내 갈등은 내년 지방선거 공천을 놓고 증폭될 수도 있다.




◇6월 촛불 밝힐 진보진영

봉하마을에 켜진 촛불 / 경남도민일보

진보진영, 시민사회단체에서 지난해 촛불을 올해 6월에 되살리겠다고 선언했었다. 6월 총력투쟁으로 임시국회 때 미디어법 등 'MB 악법'을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 '촛불'을 부담스러워 한다. 벌써 분향소 설치를 놓고 마찰도 생기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도 발걸음이 바빠졌다. 당면 투쟁을 준비하다 큰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는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현 정부를 겨냥했다.

경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성명을 통해 "지난 15개월 동안 노무현 흔적 지우기에 몰두한 이명박 정권과 이에 편승한 정치검찰을 오늘의 비극을 가져온 주범으로 규정하며 이명박 정권의 야만성과 비정함에 한없는 분노와 규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차윤재 상임대표는 "이번 사건이 범진보진영 사회단체 단결이 기운이 높아질 것"이라며 "6월 MB 악법 저지를 위해 촛불을 켜 투쟁을 고양하는 상황인데 핵폭탄이 터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장례 치르면 끝나는 사건은 아니다. 상황이 이런 데 정부와 한나라당이 MB악법을 밀어붙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추모분위기가 반정부 흐름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흐름에 노 전 대통령 서거는 큰 변수다. 민주노동당 하 처장은 "개혁진영이 분열로 갈지 화합해서 반이명박으로 나갈 것인지가 문제인데 이명박 정부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사회민주주의연대 주대환 대표는 "한나라당에서 국민통합을 들고 나설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중립적인 사람도 등을 다 돌릴 것"이라며 "이번 사건이 추모에 머물지 않고 사상계와 정치계가 반성하고 앞으로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