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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니다

동행

가끔 부끄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큰 울림이나 감동은 아니지만 깨달음, 그렇지 못한 제 삶의 자세가 들통날 때입니다.
얼마 전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1월 10일 TV를 보고섭니다. KBS1 TV에 매주 목요일 밤 11시 30분에 하는 <현장르포 동행>. 그날 제목은 ‘아빠, 대학 갈래요’
20년 전 철강회사에서 일하다 오른손을 잃은 아빠. 지금은 택시를 몰지만 회사는 부도났고, 새벽부터 다녀봐야 하루 벌이 5000원, 1만 원이 전부입니다.
엄마는 식당을 하다 허리를 다쳐 일을 못합니다.
열여덟 살 민경이는 그런 부모의 큰딸입니다. 버스비가 없다며 걸어가라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한 시간 동안 걸어 학교에 가는 마음 깊은 딸입니다.
학교에서 1, 2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데, 의대를 가고 싶은 데 집안 형편이 문제입니다.

아버지는 어렵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취직하면 안 되겠나?”, “안 해”
“맥지 힘빼지 말고 못 갈 거 그만두면 안 되겠나?”, “안 해”
제대로 공부 못했고, 어렵게 사는 서러움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속 깊은 민경이는 그런 소리를 듣고도 그냥 공부를 합니다.
취재하는 이가 민경이에게 물었습니다. 대학가고 싶냐고. 민경이는 “지금은 어려우니까 당장은 못 가겠지만 가겠다”고 했습니다. “대학이 꼭 고교졸업하고 가란 법이 있나, 취직해서 돈도 벌어서,,,, 10년 안에 갈 거다”.
그래서 취재하는 이가 괜찮겠냐고 물었습니다.
민경이가 하는 말이 저의 마음과 머리를 때렸습니다. “원래 인생은 삼십부터예요.”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저렇게 당당한데. 안타까운 건 갈수록 빈곤의 대물림은 심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저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참고로 <현장르포 동행>을 소개하면. ‘동행’입니다. 작년 11월 8일 6식구의 40대 가장의 이야기인 ‘두 번째 약속’이 첫 방이었습니다.
기획자는 ‘양극화 시대, 동행해야 할 이웃들에 대한 현장보고서’라고 소개했습니다. 또 ‘한국사회 신빈곤 현실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가 될 터’라며 기획의도를 밝혔더군요.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어려운 이들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고비를 함께 이겨낼 삶의 동행자가 되자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코끝 찡함을 뛰어넘어야 할 우리의 숙제입니다. 같이 가야 할 길입니다.

2008.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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