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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와 부끄러움


“과거 이야기를 부풀리면 나를 좋게 볼 것이다? 점점 더 나를 사기꾼으로 볼 뿐이다. 너를 증명하는 것은 너의 현재다.”

인터넷에 떠도는 ‘남자 나이 마흔 넘어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라는 글 중의 하나다. 몇 년 전 이 글을 읽고 메모장에 옮겨놓고 다시 보곤 한다. 나이 먹어가는 게 부담스러워지던 때 가슴에 쏙 들어왔었다.

나이가 들면서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역할과 책임이 커진 탓도 있겠지만 시야는 좁아지고 생각은 굳어져 간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게 되고,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해진다. 잘못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도 모른다.

불통 독선의 정치인 꼰대질은 더 피곤

우리는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이 세상 이치나 원칙인 양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걸 ‘꼰대질’이라고 한다. 꼰대질은 특정 이념층이나 출신·나이 구분이 없이 나타나는데도 ‘기성세대=꼰대’로 보는 시각도 있다.

꼰대스러워지는 걸 경계하지만 쉽지 않다. 윽박지르는 나를 볼 땐 당혹스럽다. 모두를 위한 행동이라거나 일종의 고립감에 대한 항변이라고 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합리화일 뿐이라는 걸 안다. 나의 이익을 취하지 않았더라도 남에게 피해이고 폭력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꼰대질을 하면 더 피곤해진다. 영향력이 큰 만큼 피해도 커진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는 페이스북에 제대로 꼰대질을 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20대 청년들에 대한 저의 지지가 낮은 것은 아마도 꼰대이미지 때문일 겁니다”라고 했다.

인정은 좋았다. 자수성가한 자신의 이력을 읊은 것까지도 봐줄 만했다. 그런데 “야들아 내가 너희들의 롤 모델이다. 그런데 왜 나를 싫어 하냐?”고 내질렀다. ‘왕년’, ‘성공’, ‘반말’은 일명 꼰대어로 꼽힌다.

주권자의 반성이 새로운 세상 만들 것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을 불통, 독선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은 독재자다. 우리는 여러 독재자를 거쳤다. 불행한 역사다. 그런데 ‘스트롱맨’이 필요하다며 그런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이도 있다. 통치의 시대, 거꾸로 가자는 것인가. 우리는 자치를 원하는데 말이다.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촛불의 힘으로 만든 선거다. 촛불정국과 탄핵정국에서 사람들은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세상을 외쳤다. 도덕이 바로 선 세상, 성공한 삶은 아니더라도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하고 있다. 이번 대선은 그런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 관문이다.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은 좌파·우파,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다.

도덕은 부끄러워할 줄 아는 데서 시작한다. 박근혜를 대통령직에서 파면하고 감옥에 보낸 것은 자각하고 반성한 주권자들이 행동으로 이룬 것이다. 특히 기성세대의 부끄러움이 크게 작용했다. 꼰대스러움보다 부끄러움을 선택한 어른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광장에 모였듯이 새 세상을 찍을 것이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