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부끄럽습니다. 민주언론상 수상 소식을 듣고 가슴이 따끔거리고 낯짝은 화끈거렸습니다. 밀양에서 만난 할매·할배들이 언론을 욕할 때 느꼈던 증상이 되살아났습니다.
주민들은 기자들에게 말합니다. “찍어가면 뭐하노 나오지도 않는데.”, “있는 그대로 나가면 다행이다. 거짓말 하지마라.”, “사람 죽는다니 이제 왔나.” 주민들은 “제발 살려달라”고도 합니다.
주민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8년 싸움을 해오면서 언론사마다 성향까지 다 파악해버린 것이지요. ‘전력위기’, ‘지역이기주의’, ‘외부세력’이라고 휘갈기는 언론을 말입니다. 한 농성장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출입금지 언론사 목록이 적혀있을 정도입니다.
말이라도 붙이면 주민들은 어디서 왔느냐고 묻습니다. “경남도민일보는 보도 잘 해주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도 기분이 좋거나 뿌듯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끄러워집니다. 쪽 팔린다는 말이 딱 맞겠습니다.
밀양 주민들에게 ‘대한민국 언론’은 그랬습니다. 그들에게 언론은 ‘언론’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콕 찔린 가슴은 아프고, 낯짝을 들기 부끄러웠습니다.
밀양 송전탑 사태 원인은 정부와 한국전력공사가 밀어붙인 국책사업 방식입니다. 8년 동안 사태가 장기화된 것도 정부와 한전 잘못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언론 탓입니다. 언론이 제 역할을 했다면 칠순 어르신이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숨지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밀양 송전탑 사태 취재는 이런 부끄러움에서 시작됐습니다. 사실 8년 묵은 사태를 헤집어서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나가 나오면 또 다른 것이 연결돼 있고, 사태의 근본을 찾아 들어갈수록 복잡합니다.
일방적인 송전선로 공사를 가능하게 했던 밑바닥에는 초법적 전원개발촉진법이 있습니다. 765㎸ 초고압 송전탑을 반대하는 주민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재산 피해뿐만 아니라 건강에 해를 주는 전자파 문제도 있습니다.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 타당성 문제를 따지고 들면 신고리 3·4호기를 비롯한 핵발전소, 전력 소비가 많은 수도권에 대규모 송전을 위한 지역민의 희생과 전력공급정책 문제로 연결됩니다. 전력문제를 들추면 원가 이하 산업용 전기문제도 불거집니다. 결국 밀양 송전탑 사태는 우리나라 전력정책, 에너지정책으로 귀결됩니다.
수 천명 공권력을 방패막이로 공사가 재개된 지 두 달이 다되어 갑니다. 밀양 할매·할배들은 8년 동안 그래 왔듯이 지팡이를 짚고 산을 오르고 길바닥에서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충돌과정에서 다쳐 병원에 실려갔던 주민들은 농성장으로 돌아옵니다. 태풍이 와도 추위가 와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삶의 터전을 지키겠다는 것이지요.
현장 취재를 다녀오는 동료는 고통에 시달립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밀양’이 틈만 나면 아른거립니다. 비가 올 때나 추워지면 더 그렇습니다. 파란 하늘을 보며 무심코 ‘아, 날씨 좋다’ 했다가 입속으로 삼켜버리기도 합니다.
경남도민일보 밀양 송전탑 사태 보다가 특별했겠습니까. 잘했다면 끈질기게 계속 보도하고 사람들이 알아야 할 사실들을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기본을 했을 뿐이지요. 그런데 민주언론상을 받는 것 또한 ‘부끄러운 언론의 자화상’입니다.
언론인들에게 고합니다. 부당하게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 언론의 책무입니다. 언론은 밀양 할매·할배들의 절규에 응답해야 합니다.
* 이글은 11월 2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노조 창립 25주년 기념식과 민주언론상 시상식 자료집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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