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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둔 부모들은 험악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놀라는 정도가 아니라 몸서리를 친다. 끔찍한 일이 자꾸 생기니 '어디 세상이 겁나서 딸 낳겠나'라는 말을 할 정도다.

그래서 어머니들이 나섰다.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거리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아동성폭력 지킴이 자전거 순찰대다.


자전거 순찰대 깃발을 단 상남동주민자치센터 노란 자전거들은 매주 화·목·금요일 오후 2시부터 하교 시간에 맞춰 동네를 한 바퀴 돈다. 상남·웅남·동산초등학교와 상남·웅남중학교, 인근 공원을 돌고 나면 2시간이 훌쩍 지난다.


서정윤 부대장(왼쪽에서 다섯 번째)이 끄는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자전거 순찰대.


자전거 순찰대 서정윤(여·54) 부대장, 그는 지난달 15일 발족하고서 줄곧 순찰대를 이끌고 있다. 순찰대 활동을 하면서 마산지역에서 20여 년 동안 학교생활상담교사를 했던 경험도 도움이 된단다. 아이들 심리와 행동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남동주민자치위원회 정해룡 위원장과 남기철 간사가 제안을 하면서 자전거 순찰대가 생겼어요. 환경 문제도 좋지만 자전거 교실을 마친 사람들과 뭔가 해보자고 뭉쳤죠."


상남동주민자치센터에는 지난해 4월부터 자전거 무료교실이 열렸는데 교육을 마친 사람들의 후속 모임이 바로 자전거 순찰대다. 자전거 교실 수료자 중 뜻이 맞는 20여 명이 3조로 나눠 매주 하루씩 자전거 순찰을 나선 것이다.


그는 꾸준히 순찰 활동을 하면 효과가 커질 거라 확신했다. 예방 효과다. "아이들이 누군가 지켜준다는 생각을 하면 얼마나 마음이 놓이겠어요. 시민도 마찬가지고. 밤에 경찰 순찰차가 다니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잖아요. 우리 자전거 순찰대도 그렇다고 봐요."


서정윤 부대장은 자전거교실 강사도 맡고 있다. 그의 지도를 받은 사람만 100여 명. 아예 자전거를 타지 못하던 이들을 도와 왔다. 3개월 과정으로 기초부터 시작해 완벽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만든다. 안전교육은 필수다.


그는 운이 좋았다. 합천이 고향인데 양조장 딸로 태어나 어릴 때 오빠에게서 자전거를 배웠고, 전용 자전거도 있었단다. "그때만 해도 어른들이 여자들은 자전거 타면 시집 못 간다고 했어요."


상남동 자전거 교실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그런 어른들 탓에 자전거를 배우지 못했다. 지금까지 수강생 중에서는 63세 할머니도 있었단다. 자전거도시 창원시내에 공영자전거 '누비자'가 많지만 자전거 못 타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상남동자전거타기실천협의회 총무 일도 하는 그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은 종일 자전거를 탄다. 회원들과 주남저수지, 귀산동, 마산음악관까지 달리고 와서 오후 4시부터는 2시간 동안 자전거 교실 수강생들을 가르친다.


"자전거 타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건강에 아주 좋아요. 머리가 맑아지고 보약이 뭔지 모르고 살 정돕니다." 자전거 예찬론자다. 교직에 있는 남편 자랑도 했다.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건 다 남편 '외조' 덕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재밌게 산다고 했다. "제 기능을 남에게 전수할 수 있다는 게 아주 좋아요. 스스로 업그레이드 되는 그런 기분, 많은 사람도 만나고 인생에 이런 즐거움이 있구나 생각하면 너무 재미납니다."


이끄는 사람이 재미가 난다니 상남동 자전거 교실과 순찰대는 계속 살이 붙을 것 같다. 그는 자전거 교실에 참여하는 노인들에게 애착이 많아 간다고 했다.


"60대 할머니들도 배울 수 있다는 도전의 기회입니다. 3개월만 배우면 자전거 탈 수 있어요. 도전해보세요."




Posted by 포세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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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neowind.tistory.com BlogIcon 김천령 2010.10.15 1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이래저래 걱정인데,
    어머니들이 나셔셨군요.
    화이팅입니다.

  2. Favicon of http://ad.pandoraoutls.com/ BlogIcon pandora uk 2013.04.01 2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름다운 여자가 해바라기하는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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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여졌다한들 슬퍼하지마. 이후에 만나게될 더좋은 사람을 위해 항상 웃는얼굴 잃지 말자.


독서왕 진해 제황산초등학교 김현희 양


늦더위가 기승이지만 가을 문턱이다. 더위가 한풀 꺾이면 독서의 계절이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다. 바삐 돌아가는 일상에서 책을 꾸준히 읽기란 쉽지 않다고 하면 변명일까.

독서 삼매경에 빠진 친구를 만났다. 창원시 진해구 제황초등학교에 다니는 김현희(5학년) 양. 현희는 진해중앙도서관이 뽑은 초등학생 고학년부문 '7월 독서왕'이다. 진해중앙도서관 독서통장을 만든 어린이는 4000여 명, 하루에 평균 500권을 빌려가는 데 그중에서 으뜸이다.


독서왕은 진해중앙도서관이 매달 책을 가장 많이 빌려본 어린이인데 현희는 지난 한 달 동안 36권을 빌려 봤다. 도서관에서 읽은 책도 있으니 하루에 평균 1~2권은 본 셈이다. "도서관은 시원하고 책도 볼 수 있으니까 일거양득이잖아요."


하루에 1~2권씩 보는 책벌레

독서왕에 선정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독서저축통장에는 현희가 지금까지 본 책 이름이 다 적혀 있다. 200권까지 기록된 독서저축통장이 벌써 세 개째다. 현희 독서 삼매경은 어릴 때부터 책을 가까이했던 영향이 컸다. 사촌 언니와 오빠들이 보던 책을 많이 물려받았단다.


집에 있는 책만 보던 현희가 새로운 책 세상을 만난 두 번의 계기가 있었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학교 도서관을 알게 된 게 첫 번째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차 타고 지나가다 진해 중원로터리에 있던 진해중앙도서관(현재 육대 사거리 인근으로 이전)을 우연히 만났다. "도서관 역사가 오래돼서 '더 많은 책이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매일 도서관을 찾았다. 지금은 학년이 높아져서 공부하고, 방학숙제 하느라 일주일에 2~3번 도서관에 간다. 대신 한번 도서관에 가면 두세 시간은 기본, 집에 갈 땐 책을 빌린다. 현희는 더 넓은 책 세상을 기다린다. 어린이실이 아니라 더 많이 책이 있는 자료열람실을 이용하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중학생이 돼야 들여 보내준다고 했다.


편식하지 않는 독서법
현희의 독서법는 편식이 아니다. 문학, 과학에서부터 예술, 철학까지 두루 섭렵한다. 친구들에게 책 보기 습관을 들이는 조언을 부탁했다. "두꺼운 책은 지루할 수 있으니까 얇은 책부터 먼저 보면 독서 습관을 기를 수 있어요. 또 권장도서나 자기 취미에 대한 책을 찾아서 보는 것도 방법이예요."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습관이 몸에 배었으니 재밌는 책을 잡으면 한 번에 독파한다. "진득하니 의자에 앉아서 책 보는 걸 좋아해요." 어릴 때 태권도 학원 다닌 건 빼면 학원을 별도로 다니지 않는단다. 집에서 요점정리, 문제풀이하면서 공부하는 스타일이다. 책을 많이 읽어서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몰랐던 세상, 다른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있어서 좋아요. 특히 사회과학, 수학 쪽에 도움이 많이 돼요."


성장기 담은 <청소부 밥> 감동
추천하고 싶은 책 소개를 부탁했다. 현희가 가장 감동 받았던 책은 <청소부 밥> 어린이판이다. 공부는 잘하지만 이기적이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크리스가 청소부 밥 할아버지를 만나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밥 할아버지가 매주 수요일마다 명언을 하나씩 이야기해줘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해준 이야기를 듣고 크리스가 변화해가는 과정은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정확한지 모르겠는데 '친구들과 다투더라도 그냥 넘어가지 마라'는 명언이 기억에 남아요."


현희가 책도 많이 읽고 도서관을 자주 찾으니 동생 재현(1학년)이도 누나를 닮았다. 재현이는 여섯 살 때부터 누나를 따라 도서관에 다녔다. 현희는 동생이 제목이 재밌는 책을 잘 본다고 귀띔했다.


연예인보다 제빵사가 되고 싶어
현희는 빵이나 요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단다. "TV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봤는데 빵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어 보였어요." 오븐이 있는 마산 이모 댁에 가면 빵 만들기를 많이 한다고 했다. 동생 재현이 꿈은 해군이다. 배도 타고 싶고 해군인 아빠가 너무 멋있단다.


현희는 글쓰기도 좋아한다. 독후감도 즐겨 쓰고, 읽은 책의 다음 이야기를 이어보기도 한단다. 1학년 때부터 독서록을 써왔는데 조만간 블로그를 만들 계획이다. 비밀인데 특별히 알려준단다.

이름은 '현희의 책 놀이터'. 독서 왕 현희의 블로그가 벌써 기대된다.




Posted by 포세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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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돌아갔던 서정홍(52) 시인이 도시 사람들 앞에 섰다. 창원 용지사회교육센터가 마련한 초청특강을 위해서다.

도시를 떠나 합천 황매산자락에서 6년째 농사를 짓는 그는 농부다. 오전·오후 한 번씩 버스가 다니고, 최근에서야 인터넷이 들어온다는 동네에 산다. 농부시인이 14일 오전 도시 사람들에게 '조화롭고 아름다운 삶을 꿈꾸며'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가 말하는 아름다운 삶의 열쇠 말은 '어머니'와 '아이들'이다. "농사일이 아무리 바빠도 어머니, 학생들 만나는 자리에는 꼭 갑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머니 존재와 역할,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의 중요성을 말했다.

환경을 죽이고 살리는 것도 사람이고, 사람 중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또한, 어머니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에게 자유를 줄 수도 있고, 불행을 줄 수도 있다. 새들도 둥지가 하나인데 생각할 줄 아는 사람만이 더 큰 집을 원하고, 여러 채를 가지려는 것에 대해 '악질 자본주의'에 물이 들어서라고 꼬집었다.

"제가 농약도 안 치고 비닐도 씌우지 않고 농사짓는 것은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죄를 적게 짓고 살려는 것이죠.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아이들 때문에 이웃을 만나고 대화를 합니다. 아이들이 없으면 시를 쓸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눈을 감게 하고 양성우 시인의 시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를 읽어주고, <엄마나 누나야>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무덤 비석과 지방에 왜 '학생'이라고 쓰는지를 "사람은 죽어도 배워야 사람이 된다"라며 책을 읽고, 좋은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하루하루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아이들이 돈 많이 벌고 환경 오염시키는 직업을 갖도록 강요하는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돈이 많은 곳에는 죄가 쌓입니다. 불변의 진리입니다. 초등학교 아이들도 정직하게 살아서 돈을 벌 수 없다는 걸 압니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종교는 사이비 종교라고 했고 그런 곳에 헌금을 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용기 있는 사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버리고 흙으로 돌아간 것도 용기라고 했다. "세상은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이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바뀌면 가정이 바뀌고 이웃이 바뀌고 나라가 바뀝니다."

또한, 짜증과 화를 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달으면서 아이들과 가족, 이웃들도 소중하다는 것 알게 되고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서정홍 농부시인 특강은 용지사회교육센터가 문을 연 지 13주년을 맞아 준비했다. 사회교육센터(26개)와 마을도서관(9개)은 창원시가 지난 2004년 평생학습도시로 지정된 근간이다. 경남정보사회연구소가 1995년부터 마을도서관 사업을 시작하면서 뿌리를 내렸고 용지사회교육센터도 연구소가 97년까지 운영하다 주민자치위원회에 이관했다. 사회교육센터와 마을도서관 운영주체는 15곳이 주민자치위원회, 4곳이 아파트운영위원회, 4곳이 경남정보사회연구소, 10곳이 시민사회단체다.
 

서정홍 시인은?


1958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마창노련문학상
1992년 전태일문학상
우리밀살리기운동, 우리농촌살리기운동, 경남생태귀농학교 운영
2005년부터 경남 합천 가외면 황매산 자락에서 농사지으며 열매지기공동체와 강아지똥학교 운영

저서
시집 <58년 개띠>, <아내에게 미안하다>,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우리집 밥상>, <윗몸 일으키기>, <닳지 않는 손>
자녀교육이야기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 노릇은 해야지요>
산문집 <농부 시인의 행복론>
 




Posted by 포세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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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도지사와 민주노동당 정무부지사. 김두관 도지사 당선자와 민주노동당 강병기(49) 전 최고위원은 도지사 야권단일후보 경선에서 경합했던 관계다.

단일화 때부터 정무부지사 내정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강병기 정무부지사 내정자는 인사를 발표하기 직전인 29일 오전 10시 24분에 당선자로부터 공식 통보받았다고 했다.


그제 서야 아내에게도 알렸다. 지난 4년 동안 민주노동당 도의원으로 활약했고 6·2 지방선거에 진주시의원으로 당선한 김미영 씨가 그의 아내다. 진주에서 활동할 아내,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아들, 자신은 창원에 있어야 하니 "식구 셋이 솥을 세 개나 걸게 됐다"고 했다.


정무부지사, '부담 백배'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적 중용에 대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이 클 수밖에 없다. 그는 정무부지사로서 중앙정치권의 인맥 등 취약점도 인정했다.


강 내정자는 "도민이 걱정을 많이 할 것이다. 중책인 만큼 잘해야 한다는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당선자가 훌륭히 도정을 이끌 수 있도록 보좌하겠다고 했다. 또한, 민주노동당이 추구하는 서민 살림살이 챙기는 도정이 되도록 하고 정책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서민 살림살이 중에서도 '일자리'를 가장 중요하게 꼽았다. 그는 "당선자가 중요하게 공약한 게 일자리 부분이다. 실무적으로 청년·서민 일자리를 위해 새로운 성장 동력 마련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강 내정자는 선거를 앞두고 지난해 12월 도지사 후보 중에서 가장 먼저 출사표를 던졌고 '경남의 편식정치를 끝내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러나 야권단일화 과정에서 경선에 지면서 후보를 사퇴했다.


선거운동 과정에 김 당선자 뒤에는 강 전 최고위원이 있었다. 한나라당은 민주노동당과 선거연합에 색깔을 칠하기도 했고 김두관 후보가 당선하면 경남은 '좌파 해방구'가 된다고 하기도 했다.


그는 기우라고 했다. "보수진영에서 민주노동당 인사가 깊숙이 관여하면 골치 아픈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는데 직접 같이 해보지 않았으니 편견, 선입견이 있을 수 있다. 저는 진보주의자임은 틀림없으나 그 실현에는 누구보다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선입견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자신 있다."


민주노동당 출신 전국 최초 광역자치단체 정무부지사로서 성과, 2012년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 흐름에서 진보대통합과 맞물린 공동정부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숙제다.


그는 "민주도정협의회가 중요한데 잘 운영이 돼서 야권이 모처럼 단결하고 도정으로 평가받아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 2012년 이번 지방선거와 같은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책임이 막중하다. 그를 바라보는 눈도 많다. 잘못하면 혼자가 아니라 진보진영 전체를 욕 먹인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서민정당으로서 희망을 줄 책임이 있다. 잘못하면 냉혹한 평가를 받게 돼 있다. 물러날 때 도민을 위해 열심히 하고 민주노동당 정신에 맞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강병기 경남도정무부지사 내정자 약력

2001년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2002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2003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치위원장
2003년 진주시 학교급식조례제정 주민발의위원장
2003년 달팽이어린이도서관 건립추진위원장
2006~2007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2008년 18대 국회의원 출마(진주을)
2009~ 민주노동당 진주시위원장
2009~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농민위원장
2009~ 시외버스 부당요금 징수문제 해결을 위한 경남대책위 상임대표
2009~ 쌀값 지원 조례 제정 청구인 대표
2009~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더큰경남발전위원회 위원장



Posted by 포세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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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3hal.tistory.com BlogIcon 승환 2010.06.30 1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현에는 합리적'이라는 말에 일단 기대합니다요. ^^

  2. Favicon of http://blog.daum.net/sungsim1 BlogIcon 성심원 2010.06.30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내일이면 공식업무를 시작하겠네요. 처음 마음 먹었던 다짐이 변하지 않고 끝날때까지 도민과 함께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3. Favicon of http://mang2goon.tistory.com BlogIcon 채림 2013.03.22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농장에 좋은 것



"여장부들 아입니꺼. 한 사람은 민주노총을 만드는 데 주춧돌이 됐고, 한 사람은 한국노총 핵심인데." 6·2 지방선거에서 경남도의원으로 뽑힌 두 여성 비례대표에 대해 초창기부터 마산자유무역지역에 몸담아 온 이의 말이다.

'여장부'는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 이종엽(46) 당선자와 한나라당 비례대표 2번 최해경(43) 당선자다. 두 사람은 80년대 후반과 90년 초반 마산자유무역지역 내 일본자본 투자기업 한국중천전화산업(주) 여성 노동자였고, 노동운동을 함께 했었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경남도의원 이종엽 당선자

이종엽 씨는 한국중천 초대·2대 노동조합위원장을 했고, 최해경 씨는 초대 노조 사무국장을 맡기도 했다.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로 그해 겨울 전국에서 처음으로 지역 노동조합연대체인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마창노련) 깃발이 올랐다. 당시 마산수출자유지역 8개 사와 창원공단 11개 노조가 참가했는데 700~800명이 일하는 전자회사 한국중천은 핵심 중 한 곳이었다. 마창노련이 뿌린 씨앗은 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출범으로 이어졌다.


이종엽 씨는 마창노련 2·3·4대 부의장과 권한대행을 하며 90년 1월 총파업을 이끈 뒤 구속(2년 4개월 옥고)되면서 해고됐다.


두 사람의 인연은 여기까지다. 두 사람 모두 그때 상황에 대해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종엽 씨가 해고되고 나서 최해경 씨가 노동조합 위원장을 맡았다. 최 씨는 3대 때부터 현재 11대까지 내리 9선을 했다.

한나라당 비례대표 경남도의원 최해경 당선자

최해경 씨는 한국중천 노조를 이끌며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내 핵심이 됐다. 현재 한국노총 경남본부 사무처장, 마산지역지부 의장, 한국노총 회계감사,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노총 지도부로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노동자 몫으로 한나라당 비례대표 도의원 배지를 달게 됐다.


정치 이력을 따지자면 이종엽 씨가 앞선다. 이 씨는 2002년 지방선거 때 민주노동당 후보로 창원시의원(가음정·성주동)에 출마해 당선했다. 이어 2006년 선거에서 재선하고 창원시의회 부의장도 했다.
이종엽 씨는 산업건설위에서 활동하면서 지역 재개발·재건축 문제에서 주민의 대변자로서, 노동자 출신으로서 시청 내 비정규직 실태조사를 벌여 4대 보험 적용을 받도록 하는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다. 또 모래 부정반출 사건과, 불모산 저수지 찜질방 문제를 사회문제화하기도 했다.

이종엽 씨는 "개인 이종엽이라면 할 수 없었겠지만 지난 8년 동안 시의원으로 하면서 서민과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는 성과를 이뤄냈다"라며 "한부모 가정 등 사회 약자층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도의회 상임위 중에서 건설소방위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했다.

최해경 씨는 지난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 때 한국노총이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위해 만들었던 녹색사민당 비례대표 4번으로 출마하기도 했었다.


최 씨는 비례대표 도의원에 나선 데 대해 "사업장 문제는 사업장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지역지부와 도본부에서 일을 해보니까 예산, 사회개혁, 노동자 전체를 위해서는 도의원으로서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라며 "노동관계, 취업, 비정규직 양산 문제 등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환경위나 문화복지위에서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20년 동안 다른 길을 걸어오다 동료 의원으로 만날 두 사람 모두 노동자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다.







Posted by 포세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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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승환 2010.06.15 1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결론... 믿어도 되겠습니까?
    나중에 다른 말 하면... 와웅~


       
진해 호루라기 박철수 씨

'진해에서 철수 씨를 모르면 간첩이다?'
뭔 말이냐면 얼마 전까지 유행했던 '안보 협박' 같은 농담이다.


박철수(50·진해시 대죽동) 씨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김두관 도지사 후보를
응원했다. 그가 벌이는 선거운동 방식은 아스팔트 위에서 교통정리다. 그는 공식선거운동을 시작한 지난 20일부터 꼬박 열사흘 동안 진해 안민터널 앞 네거리에 섰다.

그의 방식은 교통정리. '야권 단일후보 김두관'이 박힌
어깨띠를 하고 새벽 5시 30분부터 어둑해질 7시까지 오가는 차를 향해 호루라기를 불었다. 뻣뻣하지 않다. 차들에게 손짓뿐만 아니라 표정, 온몸으로 신호를 보낸다. 아예 아스팔트 위에서 춤을 춘다.

그를 만난 건 선거운동이 막바지에 접어들 때였다. 종일, 며칠째 그러면 피곤하지 않으냐고 묻자 "내가 후보자인데 피곤하면 지는 거나 똑같죠"라고 했다. 완전 '
골수' 운동원이다.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주고 싶단다.

후보 까다롭게 결정 … 노무현 대통령도 당선시켜

   
 
  박철수 씨는 지방선거운동 기간 진해 안민터널 네거리에서 김두관 도지사 후보를 응원했다.  
 

작달막한 키에 모자, 티셔츠에 착 달라붙는 청바지가 그의 복장이다. 뒷주머니에 반쯤 비어져나온 하얀 장갑이 돋보인다. 이런 모습들이 그를 기억하게 하는 것들이다. 건축업직업인 그가 집짓기에도 바쁠 텐데 아스팔트에 선 건 이유가 있다. 그 나름의 적극적인 유권자 운동이다.

"
아이들이 커가면서 정말 시민, 아이들을 위해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생각을 했어요. 그런 사람이 당선되도록 하는 게 세상을 바꾸는 것이지요."

그렇게 시작한 선거운동으로 김병로 전 진해시장 3선,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노 전 대통령 선거 때는 진해 육대 삼거리 앞에서 수신호를 하며 혼자 선거운동을 했다.

교통정리 자원봉사를 한 지도 벌써 25년이나 됐다. 함께 즐기면서
안전과 차량흐름에 도움을 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진해에서 열리는 벚꽃장, 각종 행사장마다 그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 김두관 후보를 도왔다고 해서 '노사모'는 아니다. 당적도 없다. 그의 방식대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밀어주지 않는다. 특별히 좋아하는 당은 없고 사람을 본다. 후보선택 기준도 까다롭다. "3개월 정도 조사를 합니다. 첫 번째가 청렴도, 그리고 자질과 능력, 이웃과 어른을 공경하는지를 봅니다."

김두관 후보 선택을 위해 남해까지 다녀왔단다. 다녀와서 일을 잘 시켜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이 정도로 꼼꼼히 따져 후보를 선택하니 선거가 다가오면 이웃들도 '철수가 이번에는 누구를 지지할까?'라고 관심을 둘 정도다. 가족들도 든든한 후원자다. "아이들이 정말로 우리 아빠는 멋쟁이라고 해요. 하고 싶은 것 즐기면서 사는 모습을 보면서."

적극적 유권자운동 … 김 후보 지지결정 위해 남해 현지조사까지

그는 선거가 끝나면 하루 쉬고 본업으로 복귀하는 게 원칙이다. "당선됐다고 공사 도움 같은 거 절대 바라지 않습니다. 있을 수도 없죠. 그렇게 하면 부끄러워집니다." 앞으로 계속 좋은 후보를 골라서 교통정리 선거운동을 할 참이다. 시민과 아이들을 위해서다.

이번 선거는 느낌이 좋다고 했다. 김두관 후보가 당선했으니 그의 느낌이 들어맞은 셈. "많은 선거를 해봤지만 이렇게 분위기가 좋은 건 처음입니다. 유권자 관심이 높아
투표율도 60% 넘을 것 같습니다."

김두관 당선자에게 한마디 부탁했다. "공약대로 경남이 대한민국 번영 1번지가 될 수 있도록, 서울과 경남이 평등해질 수 있게 해주이소. 약속 안 지키면 따지러 갈 겁니다. 잘못하면 제가 욕먹으니 책임지라 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아스팔트 위에서 추는 춤에 대해 물었다. "배운 적은 없고 리듬을 타게 돼요. 뭐든 즐기면서 하면 그 모습이 아름다울 겁니다." 그가 사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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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윤덕 2010.06.04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 인터넷 view 공간에서 선배 글을 보게 되다니... 이번 선거결과 다음으로 감동스럽군요.ㅎㅎㅎ

    댓글도 내가 일등이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저 분 소신도 정말 노무현 대통령 만큼이나 한 소신 하시네요.

    소소하지만 감동적인 기사 고맙게 읽었습니다.

    나날이 건승하시고 건강하셔용~~

  2. BlogIcon 실비단안개 2010.06.04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촛불집회 때 잠시 만난적이 있었는데,
    선거기간에 안민터널 앞에서 수신호 교통 안내에 열심이더군요.

  3. Favicon of http://kisilee.tistory.com BlogIcon 구르다 2010.06.04 16: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게 당선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군요.

    각자 자기 지지자를 당선시키기려고
    저 마다 자기가 잘하는 방식대로 운동하는 것
    앞으로 이런 선거가 정착 된다면 돈안드는 선거도 가능할 겁니다.

    이번에 촌에서는 적금 깨고, 보험 깨서 운동하신 분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잘 드러나지 않는 지지자 들이죠.

  4. 방실이 2010.06.04 1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달리 리틀노무현이라 불리는게 아니군요...나중에 대선에 꼭 나오세요

  5. 손유진 2010.06.04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헐... 세호행님 블로그였구나...
    마창대교 개통때 한번 뵙고... 못 뵈었네요.
    건필하시고...
    저도 형편 좀 풀리면 도민일보 구독 할게요... ㅋㅋㅋ

  6. 이경제 2010.06.04 1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지지자면서 훌륭한 유권자군요.
    갈채를 보냅니다.
    정말로 김두관을 사랑하고 믿기에 이런 선거운동이 가능하지요.
    김두관을 믿지만, 만약, 김두관이 기대를 저버리고 공약에 어긋나거나 반 민주적인 행위를 통해 통속적인 정치놀음을 일삼을 경우 공약을 들고나와 탄핵이라도 해야할 것입니다.
    그걸 검증하고 지켜보는 유권자가 필요합니다.
    저부터도 양은냄비같은 유권자는 이제 그만하고 철수씨같은 지지자가 되고 싶습니다. ^ ^

  7. 거울마음 2010.06.05 0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나 멋진 지지자가 있으니 멋진 당선자가 존재하시는군요. 당선자는 최선을다해 전진하시길...지지자님 또한 당선자입니다. 두 분 다 훌륭하세요.

  8. Favicon of http://automaticpetfeeder.co/ BlogIcon www.automaticpetfeeder.co 2013.03.19 1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 게시물을 참조 반갑습니다! 그러므로이 귀중한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남 지역에서 활동하며 이름난 노래꾼, 춤꾼,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생명과 평화를 노래하고 춤추고 연주하기 위해서다. 고구려 무예단, 김산, 난리굿패 어처구니, 박영운, 세이렌(지니&은주), 아리랑 무용단, 예술단 예다인, 이경민, 진효근, 철부지, 하동임, 하제운이 그들이다. 이들은 24일 오후 5시 창원 사화동 운암서원에서 열릴 경남생명평화한마당에서 출연료를 받지 않고 공연을 한다.

생명평화한마당 준비에 바쁜 김유철 준비위원장을 만났다. "생명, 평화를 간판처럼 말로 하고 활동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상입니다. 구체적으로 내 손과 발에서 어떻게 표현하는지, 가까운 가족과 동료에게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생명과 평화를 무슨 뜬구름같이 추상적으로 말로만 신봉할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표현과 실천을 고민하다 생명평화한마당을 준비하게 됐다.


도법스님(지리산 실상사 주지)이 지난 2004년부터 5년 동안 이끈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경남을 순례했을 때 함께했던 이들이 뜻을 모았다. 생명평화탁발순례에 이어 생명평화 정신을 실현하고자 전라도 영광에 생명평화마을을 짓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한마당을 준비하게 됐다.

탁발순례에 참여했던 도내 참가자 20여 명은 지난 2004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하며 '물처럼 생명평화학교'를 꾸려왔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마다 15㎞ 순례를 해왔는데 창원에서 거제까지 도착했다. 또 명상과 일상 나눔을 하고 힌두교 경전에 이어 동학 공부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어떤 식으로 생명평화마을 조성을 도울까 고민을 하다 스무 명이 십만 원씩 모으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명이 1만 원씩, 2000명이 1000원씩 모으는 게 더 낫겠다 싶었어요. 많은 사람이 생명과 평화를 공유하면서 모금을 하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12팀이나 출연하는 공연이니 행사비도 필요하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한살림경남과 창원·마산 민족예술인총연합도 힘을 보탰다. "밥 먹는 데 필요한 건 숟가락이 아니라 식욕입니다. 마찬가지로 일 할 때는 시간과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의욕이 중요하죠."


그런 자세로 문화예술인들에게 노래·춤·연주 탁발을 했고, 공연 장소도 마련했다. 운암서원에서 흔쾌히 공연장소로 승낙을 했다. 유교에 뿌리를 둔 서원에서 현대식 공연을 하는 것도 이채롭다. "옛날 종교시설이면서 교육시설인 서원이라는 곳은 현대인에게 사리진 건물입니다. 그런데 운암서원에서 '사람들이 많이 와서 마루가 반질반질해야 더 발전한다'며 공연 장소로 내준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시민들은 무료로 이날 한마당에 참여해 공연을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누구나 참석할 수 있도록 별도 표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날 제공하는 차와 음식에 대해서는 자발적으로 모금을 해서 모은 돈을 영광 생명평화마을에 기부할 계획입니다"라고 했다. 이날 노래, 춤, 연주 공연뿐만 아니라 생명과 평화가 가득한 세상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생명평화운동을 벌이는 도법스님, <야생초 편지> 저자인 황대권 생명평화결사위원장, 이병철 전 귀농운동본부장이 참석한다.
 
김 위원장은 24일 생명평화한마당에 많은 시민이 함께하길 바란다. "모두가 올 수 있는 자리입니다. 어렵게만 보이는 생명과 평화는 우리 자신의 삶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과 아이들이 부모를 보는 눈이 생명, 평화이기를 위해 마련했습니다. 더불어 사는 삶이 생명이고 평화라는 것을 말하고 춤추고 노래합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상남도 창원시 팔룡동 | 운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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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해(44) 신부님이 성경이야기 책을 냈습니다. 그가 쓴 책은 <부스러기 성경이야기>. 지난 2008년 한 해 동안 천주교 마산교구에서 발행하는 주보에 쓴 단편소설 일곱 편을 묶은 것입니다.
 
지난 연말 '열린사회 희망연대' 송년회와 겸해 출판기념회도 했으니 소설가 반열에 오른 셈이죠. 그는 "그냥 화장실 변기 뚜껑에 올려놓으시고 심심할 때 그냥 편하게 읽는" 책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름 없는 조연들이 그가 들려주는 성경이야기에서는 주인공입니다. "성경에는 주목받지 못하는 이름 없는 등장인물이 많습니다. 그 인물들을 상상력으로 추정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 어떤 소년이 내어 놓은 보리 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예수님이 5000명을 먹인 '5병 2어 기적'이 있습니다. '2000년 전이면 전 재산을 가져왔을 텐데', '그 아이가 누굴까', '누구기에 가져왔을까'라는 물음에 상상의 나래를 편 것이죠. 그 이야기가 그의 소설 '보리빵 아이' 편입니다.
 
그는 '과격한 신부'로 소문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소년 같은 그는 알고 보면 '재치가 넘치는 신부'입니다. 그 재치를 그의 표현대로 하면 "핀잔에도 굴하지 않는 '썰렁한 농담'"입니다. 넘치는 재치와 상상력이 성경 속의 이름 없는 이들을 무대 주인공으로 세우는 힘이었던 셈입니다.
 
소설책을 낸 동기는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성명서도 많이 썼고 글체도 격해졌답니다. 그런 생각을 해오던 중에 한 신도가 지난 예전에 자신이 썼던 동화를 떠올리게 했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읽을 이야기를 써보자는 마음을 먹었던 것입니다.

1녀 3남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성직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나도 모를 끌림이었습니다. 바로 형이 신부여서 자연스럽게 끌렸던 것 같습니다." 1992년 사제 서품을 받고 마산교구에서 줄곧 생활해왔습니다.

그런 재치 있고 상상력이 넘치는 그가 과격하게 이름난 건 '행동하는 성직자'의 모습 때문입니다. 나름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철학이죠. "신학생 때부터 사회 부조리에 대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신부 되고 나서 1996년 전국 종교인 평화연대 결성 당시 천주교 쪽 총무로 활동한 게 지금까지 오게 된 시작입니다."

그는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의구현사제단 마산교구 대표를 지난 2007년까지 맡았고 지금은 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일을 하고 있습니다. 친일문제 등 역사바로세우기, 지역현안에 거침없는 목소리를 내왔던 열린사회 희망연대가 창립했던 1999년부터 함께 했고 상임대표를 맡기도 했습니다.
 

지난 2002년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미순·효순이 사건 때는 마산 3·15의거 탑에서 성조기를 불태우는 현장에 있기도 했습니다. 석전성당에 몸담았던 그해 수배 중이어서 갈 곳 없는 민주노총 간부를 성당에 머물게도 했습니다.
 
선배 신부들이나 신도들로부터 '너무 튄다', '기도는 안 하고' 이런 압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동료신부이자 선배 신부인 형은 잔소리도 많지만 '가장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그는 올해로 진해시종합사회복지관장 일을 2년째 하고 있습니다. 앞서 마산시장애인복지관 초대 관장을 맡기도 했었죠. 성당은 신자들과의 관계가 주라면 복지관은 관계의 폭이 넓습니다. 공무원과 관계도 중요하고 더 현실적인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답니다. 가장 인간적인 고민을 여쭸더니 "직원들 월급날"이라고 했습니다.
 
'골고루 따뜻한 세상'을 위한 그의 고민과 활동은 계속됩니다. 최근에는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종교인을 비롯한 지역 인사들이 참여한 '경남사랑21(주)'에도 뜻을 함께했습니다. 이 모임에 대해 "2012년 대선까지 멀리 보고 아이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 이번 지방선거는 시작점이 될 것"라며 "4대강 문제, 서민문제 등에 집중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도록 관심을 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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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rosirtas.co/tas-cantik-1/ BlogIcon tas cantik dan murah 2013.04.12 1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당신의 쓰기 기술의 길을 좋아는 이터의 아주 좋은, 훌륭한 작품입니다. 난 아주 여기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대 잘 가세요

사람향 2009. 12. 6. 16:15



그대 잘 가세요

어머니는 세상 떠난 아들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머리가 똑똑하고 손재주가 좋았다고.
학교 후배들이 집에 전화할 때 '천재행님, 천재오빠'를 찾았답니다.
어머니는 "우리 집은 천 씨 집이 아니라 공 씨 집이다"라고 했답니다.

12살 어린 딸이 자꾸 눈에 들어옵니다.
해맑은 얼굴에서 진식이 형이 보여서.
어린 딸 남겨놓고 힘들어했을 그가 떠올라서.

마흔 살 인생을 살다간 공진식 선배.
고인이 떠나는 날 햇살은 눈 부셨습니다.

장례식장을 나서 화장장 가다 들렀던 마산 내서 윤전공장.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식이 행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조카의 품에 안긴 그는
필름을 맞대고 자르고 작업했던 사무실과,
굉음 속에서 이리저리 바삐 왔다 갔다 했던 공장 안에서
한동안 머물렀습니다.

이일균 노조지부장은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미련두지 마시고, 걱정하지 마시고, 모든 것 다 잊고
탈탈 털고 가십시오."

10년 동안 함께 동고동락했던 사람들은 오늘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앞선 시간과 함께 했던 사람은 더 힘들겠지요.
남은 사람의 몫입니다.

그대 잘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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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isilee.tistory.com BlogIcon 구르다 2009.12.06 2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 윤전기가 들어왔는데
    그것을 마음것 다뤄보지 못하고 떠나셨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Favicon of http://www.ymca.pe.kr BlogIcon 이윤기 2009.12.07 0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민일보 가족 중 한 분이 떠나셨군요.
    죽어서도 일터를 도와주라는 어머님 말씀이 짠하게 하는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전라도 여행에서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했던 강진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10년 정도 머무렀다는 다산초당. 산 아래에서 초당까지 오르는 길은 그의 발걸음을 뒤따르는 것 같다. 그리고 만덕산 산비탈을 따라 백련사로 가는 길도 그렇다. 백련사 주지와 왕래가 잦았다니 이야기가 길어진 날 새벽이슬, 달빛에 그 길을 걸었을 그를 생각한다.

그렇게 다산초당은 길로 와 닿았다. 마을에서 올라가다 만난 두충나무 숲길은 처음이다. 자작나무 처럼 곧게 뻗은 나무 사이로 자갈길을 밟은 느낌이 좋다. 이 길은 다산이 살던 때 것이 아니다.

다산초당 가는 길.


비탈길로 접어들어 만난 나무뿌리들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꼭 다산이 유배생활하면서 수없이 오르내렸을 그길이 헤집어져 뼈까지 드러난 그의 고통같이 와닿았다. 그길을 따라 다다른 다산초당. 근대에 가꾸었다지만 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기와집에서 유배생활을 했을라고. 다시 초가로 바꾼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짚이나 풀로 이은 집이어야 초당이지.

초당 안에 놓인 다산의 초상, 안경을 썼다. 신문물을 몸에 걸쳤으니 실학자 같다. 같이 여행한 이는 "공부 잘 하게 생겼네"라고 한다. 초당 앞에 그가 차를 마셨다는 너르고 평평한 바위. 뒤쪽 암벽에 그가 새긴 '정석', 정약용의 돌이라고 유배지를 떠나며 새겼단다.

다산초당을 찾았다면 백련사 넘어가는 길까지 가야 한다. 그가 생각에 젖어 강진만을 바라봤을 해월루에도 올라봐야 한다. 지금 사람들은 그가 그곳에서 흑산도에 있던 형 약전을 생각했을 것이라고 하더만. 꼭 형제가 그리워 먼 곳을 바라만 봤겠는가. 강진만, 매립으로 농토로 변한 곳이 예전에는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뻘이었을 것이다. 초당에서 내려가면 바로 갯가였겠다.

해월루에 바라본 강진만.



유배였지만 그래도 그는 제자를 옆에 둘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그러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키우고 발휘했으니.

* 강진의 인물 김영랑
강진읍에 김영랑 생가가 있다. 큰 길에서 생가까지 올라가는 양쪽으로 돌담이 보기좋다. <모란이 피기까지> 시로 유명한 그의 생가에는 모란이 많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는 서정주 시와는 분명히 다르다.

집 앞에는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라고 시작하는 시비가 있다. 집안에는 꽃은 없지만 모란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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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 정우상가 앞에 가면 밥 굶는 세 남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단식에 들어간 이들은 국민이 TV로 지켜보는 데도 언론악법을 날치기 강행한 한나라당과 정부를 가만둘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장맛비가 내리면 비가 오는 대로 쨍쨍한 날은 푹푹 찌는 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민주노동당 이병하 경남도당 위원장, 문성현 전 대표, 강병기 전 최고위원.



민주노동당 이병하 경남도당 위원장은 29일 단식 7일째를 맞았습니다. 이 위원장 혼자 시작했던 단식농성장에 이튿날 강병기 진주시위원장(전 최고위원), 또 다음날 문성현 전 대표까지 결합했습니다.


특히 문 전 대표는 지난 대선 이후 당직에서 물러나 거창에서 농사짓고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일을 뒤로하고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백의종군, 1년 반 가까이 정치를 떠났던 그는 평당원으로 다시 거리에 앉은거죠.


문 전 대표는 "이 정권의 언론악법 날치기 강행, 쌍용차 노동자에 대한 처참한 탄압, 이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라며 "당 대표까지 했던 사람으로서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 창원으로 왔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07년 초봄, 청와대 앞에서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저지를 위해 29일간 단식농성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농민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강병기 전 최고위원은 "다른 사람들 분위기 잡아서 단식하게 했는데 이번에는 도당 위원장과 함께 단식농성장을 지키기로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농업구조조정까지 추진하고 있어 이제 농촌몰락은 막바지에 접어든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단식하는 사람들에게 음료수를 사다주는 시민들도 보입니다. 어떤 이는 술도 끊어서 얼굴이 훤해 보인다는 농담도 던지고 갑니다. 이 위원장은 "여기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인데 발랄한 모습이 보기 좋다"라며 "젊은이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천막에 들어와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젊은이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쌍용차노동자 지원을 위한 모금함에 하루 10만 원씩이나 들어올 정도라는군요. 이 위원장은 "한참 용돈이 궁할 때인데 자발적으로 유인물을 받아가고 서명도 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일사천리입니다. 재투표·대리투표 논란에도 지난 28일 국무회의에서 언론법을 통과시켰고 31일 공포할 계획이랍니다. 그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정부의 방송장악은 오해"라고.

오해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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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니 뭐;;; 2009.07.29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식투쟁하는 인간치고 굶어죽은 사람 못봤는데....어차피 나중에 쓰러진뒤 병원에 입원해서 다 먹을거면 애초에 시작을 말지;;;

    • Favicon of http://godlessjm.tistory.com BlogIcon 새벽두시 2009.07.29 2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기 단식투쟁을 정말 굶어죽을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바보가 있습니다. ;;;

    • Favicon of http://tnsrb.tistory.com BlogIcon 하아암 2009.07.30 0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차피 배고픈데... 밥은 왜 먹습니까?";;

      밥을 굶어가면서도 '의지'를 보이는겁니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욕구중의 하나인 '식욕'을 거부하고 말입니다.

  2. Favicon of http://godlessjm.tistory.com BlogIcon 새벽두시 2009.07.29 2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힘드시겠네요 ㅠㅠ
    한사람의 대통령이 나라를 살릴 수는 없어도.. 망하게는 할 수 있다더니.. ;;
    얼마나 망가뜨려야 멈출지.. 답답합니다.

  3. Favicon of http://tnsrb.tistory.com BlogIcon 하아암 2009.07.30 0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남 소식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대구에서도 7월 1일부터 농성장 차리고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답니다. 건승합시다~!


정부는 케이블카 설치 기준을 완화하는 자연공원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에 1만 명이 '케이블카 없는 지리산' 선언으로 맞섰습니다.

지리산권시민사회단체협의회는 22일 오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1만인 선언 경과와 자연공원법 개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은 영남권시민사회단체, 광주전남케이블카반대시·도민행동도 함께 했습니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윤주옥 사무처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한 미래를 위한 대안이 케이블카일 수는 없습니다.", "현재 거리규정으로도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있는 데 완화하겠다는 것은 천왕봉까지 설치하고, 천왕봉에서 다른 봉우리까지 연장하겠다는 것입니다."
 
환경부는 지난달 1일 자연보존지구 내 케이블카 거리규정을 2㎞에서 5㎞로, 케이블카 정류장 높이를 9m에서 15m로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자연공원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결국 천왕봉 꼭대기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있도록 하고 저 너머 봉우리까지 설치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겠다는 거죠. 그리고 산꼭대 정류장 높이도 더 높게 올릴 수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당장 반대운동에 들어갔습니다. 지리산 노고단과 천왕봉에서 1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지난 8일부터 '케이블카 없는 지리산' 1만인 선언을 위한 서명을 벌여 지난 21일까지 2주 만에 1만 842명이 동참했습니다.
 
지리산지킴이 김병관 씨는 "가슴이 찟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는 연하천 대피소장을 했던 지리산을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일자리에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좋은 일자리를 마다했습니다. 대피소가 직영이 되고 계약갱신이 있었는데 재계약을 거부했다고 들었습니다. 케이블카 때문일겁니다.



그는 "치사한 마음도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노고단까지라면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 천왕봉까지도 케이블카가 언제 설치될 지 모른다니 기가 차지않겠습니까. 그는 "끝까지 막아낼때까지 싸울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지리산국립공원에는 △전남 구례군(산동온천~노고단) △전북 남원시(고기마을~정령치) △경남 산청군(중산리~제석봉) △경남 함양군(백무동~제석봉)이 케이블카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김병관 씨는 기자회견문을 읽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리산에 철탑을 꽂지 마라. 국립공원을 그대로 놔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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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복댕이 2009.09.02 1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리산 케이블카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알게되었네요. 감사합니다~


문장을 흔히 길이에 따라 '간결-만연체'로 나눕니다. 학교 다닐때 국어시간에 많이 들었던 단어입니다. 갑자기 왜 재미없는 단어를 꺼내느냐구요?


등산길에 샘터를 소개한 안내판 글을 읽다가 숨너어갈 뻔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누가 썼을까? 하면서 숨을 돌리긴 했지만 그 샘터를 지날때마다 궁금했습니다. 일단 안내판을 한 번 보시죠.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첫문장에서 '바랍니다'로 끝나는 9줄의 안내문 한 문장입니다. 중간 중간 쉼표가 있습니다만 이렇게 긴 문장은 처음 봤습니다.

진해 석동사무소나 대우푸르지오 뒷길을 따라 등산로를 오르면 돌리 통새미 앞에 선 이 안내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정말 길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글을 쓴 사람을 찾아나섰습니다. 다음은 그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진해 돌리 통새미 가꾼 박용대 씨  

'강철 같은 의지와 열정'으로 등산로와 샘을 가꿔 돌보는 사람을 수소문했다. 진해 석동사무소에서 천자봉 임도로 올라가는 산길에 있는 '돌리 통새미'를 소개한 안내판의 주인공이다.

'돌리'는 돌이 많다는 석동의 옛 이름이고 '통새미'는 예로부터 내려오던 이름이다. 안내판에 적힌 대로 통새미는 '장복산의 수려한 배경과 호수같이 잔잔한 진해만 바다 위에 한 폭의 그림처럼 점점이 떠있는 낭만 어린 섬들을 전망'할 수 있는 곳에 있다.

또한, '나다니엘 호손의 큰바위 얼굴 같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바위' 닮은 생김새에 그 아래에서 샘물이 흐른다. 전설 한 소절, '특급약수가 끊임없이 흘러나와 웅천 현감이 가마 타고 창원을 거쳐 한양으로 가던 도중에 쉬면서 약수로 목을 축'였단다.

가시덤불, 칡넝쿨에 가려진 통새미를 개발하고 등산로를 닦아 꽃과 나무를 심어 '쉼터'로 가꿨다는 그를 만나고 싶었다. 안내판이 처음 세워진 때가 1999년, 자주 이곳을 찾는 이들은 매일 새벽에 통새미를 돌보는 이가 있다고 했다.

10년 동안 진해 돌리 통새미를 가꿔 온 이야기를 하는 박용대 씨.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에 산길을 올라 그를 만났다. 10년 전 석동사무소 동장이었던 박용대(66) 씨가 그 열정의 주인공. 오랫동안 도청에서 일하다 진해로 옮겨 도서관장 2년하고 석동 동장을 맡았었다. 당시 주민들이 등산로에 물이 질퍽거려 옷이 젖는다고 해 등산로를 올랐던 게 지금까지 매일 오르게 된 계기다.

처음엔 '도깨비 소굴'이었다. 길도 마주 오는 사람 겨우 비켜갈 정도로 좁았고 얽히고설킨 칡, 대나무 캐내느라 고생했단다. 그렇다고 그가 가꾼 길이 신작로 내듯 확 밀어 산을 훼손한 것은 아니다.

삽질 곡괭이질은 예사고 나무를 직접 메고 올라와 심었다. 새벽같이 산에 올라 돌 치우고 쌓기, 쓰레기 줍기, 나무심기 같은 통새미 정비하는 것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한 지 10년째다. 서울 형님네 부모님 제사지내러 가는 날만 빼고 1년 내내 통새미에 출근도장을 찍는단다. 운동도 열심히 한다. 하루 평행봉 120개는 기본이다.

그는 통새미 물이 가재가 살 정도로 좋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올해는 가뭄 탓에 샘이 말랐으니 안타깝다. 올해처럼 물이 안 나오기는 10년 동안 처음이란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날은 밝아오고 오가는 사람들 발길도 잦아진다. 그에게 인사를 하던 아주머니는 "얼마나 부지런하신지, 너무 감사하다. 끝내줘요"라고 했다. 그는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른다.

동장으로 있으면서 통새미 가꾸고 공직생활 잘 마무리한 게 가장 보람이란다. 그는 보기 드물게 석동 동장을 4년이나 했다. 주민들이 부지런한 동장을 보내주지 않아서다.

그 보람은 계속 커진다. "꽃피고 얼마나 좋아예." 새벽녘에 올라와 청소하고 운동하고 바다가 보이는 탁 트인 앞을 내다보면 뿌듯하다. 10년 전 심었던 벚나무가 이제 두 손아귀로 감싸지 못할 정도다. 그의 손을 거친 나무만 해도 감나무, 밤나무, 매실나무, 복숭아, 향나무, 종려나무, 주목, 동백, 산수유, 편백, 고로쇠, 진달래 갖가지다.
 
진해시에서도 차나무를 심고 정자를 만들어 쉼터 가꾸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안내판 글귀는 자신이 쓴 거라고 했다. 세상에 스스로 '강철 같은 의지와 열정'을 가진 인간이라고 믿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 열정이 느껴진다.

그는 헤어지며 말했다.
"신문에 내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그의 열정을 소문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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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aum.net/gabinne BlogIcon 林馬 2009.03.30 2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딱히 뭐라 표현 할 수 없지만
    안면은 없지만 쏘주 한잔에 멸치대가리 안주삼아 포장마차에
    마주앉으면 입가에 미소가 흐를수 있는 사람!
    뭔가 통할것 같은, 얘기가 될것 같은 예감,
    당신은 나에게 그런 사람인것 같군요...


제대로 상대방의 말을 받아 적고 있는지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운 건 처음이다. 의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기록으로, 역사로 남기는 속기사 앞에 앉았기 때문이다.

앞에 앉은 속기사가 취재수첩에 써내려가는 글자를 꿰뚫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 혹, 보고 있었느냐고 물으니 "아까부터 계속 보고 있었어요"라고 한다.

경남도의회에서 일하는 이혜경(42 사진 오른쪽)·이기옥(40) 씨는 19년차 속기사. 속기사라 하면 1분당 320자를 옮겨 적어야 하는 전문직이다. 이들은 지난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했을 때부터 도의회를 지켰으니 지방자치의 '산증인'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들 눈에는 지난 18년 동안 도의회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도의원들이 많이 젊어지고,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그에 따라 전문화, 몇몇 의원의 적극적인 의정활동으로 전체가 동화되어가는 게 눈에 보인다고 했다. 아쉬운 점으로는 당적에 묶여 자기 의지를 밝히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초기에는 2명으로 시작했는데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새벽 4시까지 이어진 날, 둘이서 자다가 깼다 교대하며 속기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경남 속기사 1호'인 혜경 씨는 "속기사가 의회 꽃이라 했는데 꽃도 시듭니다"라고 했다. 지나온 18년에 대한 마른 감정이다. 지금은 조금 후회도 된단다.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 다른 걸 선택했더라도 아주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속기사 시험은 연습장을 사람 키까지 쌓아야 붙는다고 할 정도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어렵다. 기옥 씨도 "그때는 국회 속기사로 알고 시험을 쳤어요"라고 했다.

이들이 그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는 처우문제다. 국회는 속기직렬 공무원이지만 지방의회 속기사는 기능직이기 때문이다.

도의회 속기사 10명은 본회의, 특별위원회, 상임위원회별로 배속을 받아 둘이서 한 조로 50분씩 교대하며 일한다. 도의회 1년 중 회기 일수는 140일, 그렇다면 나머지는 일이 없을까. 혜경 씨는 "50분 끝나면 땡인 줄 아는 데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라고 했다. 속기는 받아 적는 게 끝이 아니다. 편집과 교정에 두 배 이상의 시간을 쏟아야 한다. 이 같은 작업이 비회기 기간에 진행된다. 기옥 씨는 "30일 이내 회의록을 발간해야 하는데 그 기간이 끝나기 전에 다음 회기가 돌아와요. 정신없어요"라고 전했다.

자신이 속기한 내용과 언론보도가 다를 때는 '자기 생각대로 필요한 부분을 골라 쓴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사투리 심한 의원들은 경계대상이다. 그렇다고 비속어를 그대로 옮길 수 없을 때는 분위기와 의미전달이 뒤틀리지 않게 풀어 옮긴다.

속기사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이유다. 기옥 씨는 "속기는 전문화된 기술인데 교정은 의미전달이 중요하니 감각이 있어야 해요"라며 "다른 사람들이 속기업무를 기능적으로 만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라고 말했다.

말과 글을 만지는 일이라 직업병도 있다. 신문을 보면 오탈자부터 쏙쏙 눈에 들어오고 다른 사람 말을 들어도 잘못된 말버릇부터 들린단다. 신체적인 부하도 느낀다. 잘 들어야 하고 잘 기록해야 하니 귀와 손 관리를 잘해야겠다고 하니 허리와 어깨도 중요하다고 했다. 계속된 반복작업으로 생기는 근골격계 질환을 말하는 데 아직 직업병으로 인정을 받은 사례는 없단다.

그래도 속기사로서 느끼는 보람은 의원들의 의정활동이 빛이 날 때다. 또한, 민감한 문제나 법적인 문제가 걸렸을 때 회의록이 증거자료가 됐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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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평화 탁발순례단은 여정을 끝냈습니다. 순례단은 지난 20043월부터 지난 1114일까지 5년 동안 걸으면서 8만 명을 만났다고 합니다.

순례단을 이끈 도법스님. 순례 첫해 여름날 스님은 강단져 보였습니다. “제대로 알면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생생합니다.
제대로 알면 깝죽댈수 없다 뜻의 말씀도.
여전히 숙제, 실천의 문제가 남았습니다.

식당에서 스님 공양하시는 시간을 빼앗아 가며 귀찮게 했는데도 맘에 박히는 말씀을 해주시던 모습을 다시 그려봅니다.

스님 사진은 '생명평화결사' 누리집(lifepeace.org) 사진첩에서 한 장 옮겼습니다.
(2008년 10월 14일 서울 강남)


생명평화 탁발순례단 '도법스님'
아픔 현장에 '평화의 씨' 한줌 한줌

2004년 07월 21일

"제대로 알면 행동하지 않을 수도 없고 함부로 행동할 수도 없습니다."

파괴와 야만의 역사를 넘어 생명평화의 세상에 씨앗을 뿌리려고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을 이끄는 도법스님이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에게 던지는 질책이다. 순례단은 2004년 3월 1일 한국전쟁으로 민족대립의 상처가 골짜기마다 서린 지리산을 시작으로 4·3 대학살의 피로 물든 제주도,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거제를 거쳐 지난 19일부터 마산·창원·진해지역을 돌며 소통과 연대의 족적을 남기고 있다.

20일 경남도민일보를 찾은 도법스님에게 '21세기 절체절명의 화두는 생명'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는 물음은 '우문'이 되고 말았다. 불교사상과 정신이 바로 생명과 평화를 중요시하는 것이기에 새삼스런 깨달음도 아니기 때문이다.

스님은 "불교를 제대로 하고 수행자의 올바른 삶이 생명평화라는 것으로 정리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21세기 문제는 평화의 위기, 생명의 위기"라고 운을 뗀 스님은 "강자와 약자,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생명이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인데 경제는 성장했다지만 여유롭고 평화롭기보다는 더 초조해지고 황폐화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21세기는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범국민적으로 생명평화의 싹을 틔우고자 지역을 돌며 소통과 연대의 틀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생명평화의 문제는 한반도가 처한 문제도 직결된다.

스님은 "이라크전을 전후로 해서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했는데 우리나라 의도대로 보호되고 가꾸어질 처지가 아닌 기가 막힌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이어 "강대국에 짓밟히고 찢기는 상황이지만 당사자인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포자기해서 대책도 없다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한다.

2008년 3월 25일,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은 원불교 교인들과 함께 창녕군 남지읍 박진교 옆 낙동강 둑길을 걸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운명을 지키고 주인인 국민이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단다. 순례단이 뿌린 씨앗이 '한반도를 영원한 평화의 땅으로 만드는데 함께 할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맘이다. "남과 북의 만남과 협상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민족이 주인이 되어 생명평화가 온전하게 실현되게 하는 것"이라며 스님은 한반도 문제가 정치적으로 다뤄지는 것을 거부한다.

추상적인 국가체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평화라는 구체적인 삶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특히 이라크 파병으로 김선일 씨 피살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꼬집는다. "6·25전쟁으로 처절하게 전쟁의 아픔을 느꼈는데도 분노, 증오, 이익다툼이라는 전쟁조건을 바탕으로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름을 걸고 파병을 결정했다"며 "이것은 생명평화라는 풍토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생명평화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좌·우도 만나야 한다는 스님은 우리 편이 아니면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해도 귀를 닫는 세태에 대해 "지성풍토가 빈약해서 굳어진 극단적 패거리 문제"라고 원인을 찾는다. 순례단의 발걸음으로 제주도는 종교계·시민단체·국회의원이 생명평화의 섬으로 만들자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는 성과를 만들어 냈다. 거제포로수용소 유적에서 열린 '생명평화 민족화해 거제 위령제'에서는 피해자 가해자가 한자리에 모이기도 했다.

"민족의 현대사에서 비극을 자기문제로 끌어안는 만남과 협력이 미래로 나아가는데 중요하다"는 스님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지인 마산 진전면 여양리에서 22일 위령제도 준비 중이다.

마산에 대한 느낌에 대해 "보도연맹으로 학살당한 사람에 대해 우리 민족, 지역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피해 유족과 몇몇 단체로 남아 있어 마산시민의 의식에 실망했다"며 "환경생태적 측면도 구태의연함에 의구심까지 들었다"고 쓴소리도 한다.
 
바로 자기를 비우고 나눔은 자기 것을 쌓아두지 않는 것인데 탁발을 통해 '주는 이'에게 '내주는 일·나눠주는 일·비우는 일'의 능력을 길러 생명평화세상을 재촉한다. 사람의 길보다 기계의 길만 있는 세상에서 몸으로 자연과 지역문화, 사람을 만나 자연스럽게 '광장' 문화를 만들어 가는 도법스님과 순례단의 걷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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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책이 나왔답니다. 책이름은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이 책을 쓴 이가 오도엽 씨라는 것은 오늘(12월 20일 자) 경남도민일보에 이일균 기자가 쓴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 전태일과 이소선'이라는 기사를 읽고섭니다.


최근에 이소선 여사의 여든 잔치와 출판기념회가 열렸다는, 여사가 살아온 삶에 대한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오도엽 씨가 여사 옆에서 500일 동안 듣고 쓴 생생한 이야기라는 것을 오늘 알게 됐습니다.( 오도엽 씨와 이소선 여사 사진은 <시사IN>에 소개된 것입니다.)
4년 전 기억을 되살렸습니다. 오도엽 씨를 만났던 그때. 아마 이글을 보시면 오도엽 씨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아직도 웃으면 예쁜 그의 얼굴이 생생합니다. 그를 아는 데 좀 도움이 될 겁니다. 다음은 그 때 제가 오도엽 씨를 만나고 그를 소개한 글입니다.


도시생활 접고 함안 여항산으로 간 시인 오도엽씨  

2004년 09월 13일

자신의 것을 청산하고 촌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도 물질적인 풍요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것만 있으면 족하다는 생각으로.

오도엽(37) 시인은 지난 9월 창원 생활을 접고 함안 여항산 자락에서 자그마한 빈집을 얻어 흙을 만지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의 시를 이야기할 때 현장의 시, 집회장에서나 만날 수 있는 시라고 이야기들 한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 2002년 마지막 날 밤 창원에서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두 여중생의 죽음을 추모하는 촛불이 타오르는 현장. 추모시를 읽어 내려가던 그는 "민족 주권을 찾은 내 조국 한반도를 / 겨레 자존심의 촛불을 생일상에 꽂아 주마"라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13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글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찾았을 때도 그는 현장에 있었다. 지난 10일 우리식량주권수호 함안군대회에서 '목덜미 검게 그을린 당신은 / 조선의 농사꾼 / 손 마디마디 지울 수 없는 흙이 배인 당신은 / 아름다운 조선의 농사꾼'이라는 시를 읽고 농민들과 함께한 뒤였다.

지난 97년 〈굵어야 할 것이 있다〉라는 시로 전태일문학상을 타기도 했고 창원공단에서 노동일을 하던 그가 지난해 이맘때 홀연 농촌으로 들어간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몸이 안 좋아서"라고 말문을 열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 가슴이 막혀 오는 게 꼭 죄를 많이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공장 현장소장을 맡아 출세해서 돈 욕심도 생기고 365일 매달려 있었다"는 그는 "돈에 자꾸 매여 가는 삶을 살고 있구나" 싶었단다.

노동문화예술단 '일터'에서 활동하던 아내 이수옥(35) 씨와 모든 걸 정리하고 "가난하게 살더라도 함께 노동하고 벗으로 살자"며 새로운 시작을 결행했다. 점점 자본에 얽매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을 때 일에 바빴던 아내도 "남편인지 모르겠다. 목석하고 사는 것 같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시기였다. 평생 노동자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했던 그는 파수농공단지의 한 공장에서 도장 일을 하고 아침·저녁으로 자연에서 끝없는 배움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창원으로 내려온 건 지난 91년. 그때도 후배였던 아내와 "건강한 삶을 살기위해 서로 간직한 것 버리고, 학연·지연·인연에서 가장 먼 곳으로 가자"고 선택한 곳이었다.

10여 년 창원생활의 결과물을 물었다. "고맙게 생각한다"는 그는 94년 구속돼 교도소에서 장기수 어른과 만남, 노동자로서 일하는 재미, 갈림길마다 힘든 시기는 있어도 건강한 삶을 살도록 해줬단다.

4년전 함안 여항산 자락에서 만난 오도엽 씨와 딸 겨리

지난 99년 첫 시집 〈그리고 여섯 해 지나 만나다〉라는 시집을 낸 후 아직 후속은 없다.

남에게 보이고자 쓰고 꾸며서 만드는 글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려는 것이라고 하는 그에게 시집에 대한 욕심도 별로 없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그는 꼭 하고 싶은 게 있다. "딸아이가 커가는 걸 보면서 아빠가 노동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일하는 사람의 아이들이 볼 수 있는 동화나 동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전태일문학상에 당선된 함안에서 땅 파며 살아가는 생활 글 〈참 고마운 삶〉에도 나오는 '엄마얼굴'같은 시가 아닐까 싶다.

"우리 집 밥상은 / 엄마의 땀이랍니다 // 하루 종일 / 논둑으로 / 밭둑으로 / 칼을 들고 / 호미 들고 …저녁 밥상 가득히 / 들깨 넣어 쑥국 끓이고 / 냉이 꽃다지 된장에 무쳐놓고 / 미나리 돌나물 샐러드 만들어 / 머구잎 쪄서 차려놓으면 // 검게 그을린 엄마 얼굴 보여요"


밭 한 마지기에 배추, 콩, 들깨, 옥수수, 감자 심어 먹고, 논 세 마지기에 올봄 모판 만들 때부터 쌩 씨름을 해서 논에 비료 주고 농약 치는 것 몰라도 동네 어른들 가르침 받아가며 '농사짓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 있다. 그의 〈참 고마운 삶〉에는 남이 보기에는 웃음기 배어 나오겠지만 아내와 두 마리의 소가 끄는 쟁기라는 뜻의 딸'겨리'와 '사람답게 사는 법 깨달아 가는 노동'의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이 집에서 채마밭을 일구어 시를 심어야지. 문풍지 뚫고 찾아든 달빛에 배추도 쓰고 상추도 읽어야지. 가을엔 콩밭에 달린 시를 거두고. 김장 배추밭에선 시집 한 권을 뽑아야지. 되살이도 감나무에서 따야 할 것인데. 아직은 떫겠지."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오도엽 (후마니타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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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_top_blogtop=go2myblog BlogIcon 실비단안개 2008.12.20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는 심상정인가 레디앙 기사에서 읽은 것 같습니다.
    시인의 삶 이야기가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삶이네요.

    함안이면 가까운데 - ^^

그때그사람-이발사 이장님 장신길씨(경남 창녕군 부곡면 사창리)

 이발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똑같다. 석유난로와 이발소 특유의 향이 어우러진 그대로다. 이발하러 온 이들도 연세 높은 어르신들뿐이었다. 경남 부곡온천 중앙상가 2층 중앙이용원, 지난해 2월 만났을 때 25년째 이발사를 해왔으니 올해는 26년으로 늘었을 뿐이다. 창녕군 부곡면 사창리 이장님이기도 한 장신길(66) 씨를 다시 찾았다.

마을회관 짓는다고 신경을 많이 써서 더 늙었다는 이발사 이장님 장신길 씨.

 머리카락 까맣게 물들여 50대로 보이도록 '속인' 모습도 그대로였다. 의장대를 했을 정도로 훤칠한 키도 날씬한 몸매도 여전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기자를 반겼다는 것만 바뀌었다.

  지난번 취재 때는 쫓겨날 뻔했었다. 먼 길 왔다며 능청 떨며 단골에게 타주는 커피까지 얻어 마시면서 눌러앉아야 했던 그때와는 분명히 달랐다. 반갑다며 청한 악수에 '또 쫓겨나는 것 아닐까'하는 긴장은 풀렸다.
 
  이장님을 다시 찾은 건, 큰일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부곡면 사창리 숙원사업이었던 마을회관을 다지어 마을잔치를 벌인단다.
 
  "멋진 모습 그대로시다"라니 돌아오는 말은 "신경 쓸 일이 많아서 다 늙었붙다." 75가구 챙기고, 면사무소 회의 다니면서 마을에 방송하는 일은 별일 아닌데 안 하던 일을 하니 그렇단다. '안 하던 일'이란 게 바로 마을회관 지은 것 두고 한 말이다.

 "성격이 그래서 그런지 하나라도 잘하고 싶고 뭐 하나 남기고 싶은데, 글이 길면 글로 하겠지만 글도 짧제, 배운 거도 없제, 그러니 더 그렇지." 6남매 중에 셋째였던 그는 초등학교 공부가 끝이었다. 나이 먹고 이장일도 싶지 않았다. 지금은 나이 많은 후배가 한 명 생겼지만 부곡면 이장 중에서 나이는 제일 많지만 이장경력은 '1학년'으로 제일 짧았다.
 
 경력 짧은 이장이 애살스럽게 일을 차곡차곡 해냈다. 1970년대 마을 사람들이 새마을 운동 때 직접 블록 찍어서 지었던 회관 헐고 빨간 벽돌 회관을 새로 지었다. 옛 회관이 있던 터(200㎡)가 이장님 할아버지가 마을에 내놓았던 것인데 이번에 주변 터 400㎡를 마을기금으로 사들였단다.

 회관 앞마당에는 느티나무 한그루도 심었다. 6남매 중 유일하게 생존한 일본에 사는 삼촌이 기증한 나무다. "한 달 전에 성묘 다니러 오신 삼촌께 '마을회관도 새로 짓는데 좋은 거 표시 하이소'했지. '뭐하면 좋겠노' 해서 나무 한 그루 심자고 했다 아이가." 물건이야 낡으면 부서지고 버리면 잊히지만 나무는 자라서 동네 사람 땀 식혀주고 그늘이 돼 오래오래 남는다는 뜻이다. 정자나무가 될 나무인 셈이다.

 그 앞에 선 표지석 문구가 멋지다. 'One For All, All For One', "삼촌이 문구에 딱 크기까지 정해서 보낸 대로 했지." 20일 마을회관 낙성식을 앞두고 잔치준비도 바쁘다. 이장님은 "동네잔치만 하면 되나 군수, 도의원, 군의원 다 모셔야지. 마을회관 짓는데 손 내밀 때 있나. 군의원, 도의원 찾아가서 짤았지"라고 했다. 사창리 마을회관 짓는 데 건축비만 8800만 원이 들었다. 모두 군에서 도에서 지원받은 돈이다.

 "군청에 수도 없이 쫓아다녔다. 내 장가가서 새살림 차리는 거보다 더 힘들더만. 돈은 나라에서 주고 건물은 공사하는 사람이 다지었지만 신경은 많이 쓰이데." 건설자재가가 올라 일이 털어지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자기 돈으로 자기 집 짓기도 어려운데 나랏돈으로 마을회관 짓기 쉽겠나'. 고생했다는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번듯하게 마을회관을 지었으니 2년 임기 깨끗하게 마치고 싶단다. 올 연말에 후임 이장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장님 바람은 변함없다. 이발소 문 닫으면 가방에 이발도구 넣고 동네마다 찾아다니며 이발 봉사하는 것이다. '그 꿈 언제 실행에 옮기느냐'라고 묻자 대학원 다니는 아들 뒷바라지만 해놓고 나서란다.

 "공부시키는 놈 있으니 그때까지는 해야 한다. 그거 끝나고 나면 내 먹고살고 애들 공부시키게 해준 어른들 찾아다니겠다는 약속은 꼭 지켜야지." 





 

25년째 이발관 운영해 온 장신길씨 
"단골관리 비결? 뭐, 정이지요"...커피 한잔·대화 나누는 정 멀리서 찾아오는 이 많아 
 
 2007년 02월 15일
"이 늙은이가 본대로 말씀드릴게요. 나이가 많은 늙은 영감이 다리가 불편해서 이발하러 가고 싶어도 못 간다는 전화가 오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꼭 데리러 간답니다. 이발요금 9000원 받겠다고 10분이고 20분이고 시간을 허비하면서 그렇게 합니다."
 창녕 부곡 거문리에 사는 칠순 노인이 보낸 편지 내용이다. 편지지 11장에는 구구절절 이발사를 칭찬하는 글로 가득했다. 이 편지를 보낸 이는 지난해 5월 '부곡 할매표식 사랑 전하는 이정수·강미진 노부부'라는 기사에 소개됐던 이정수 할아버지. 고성공룡엑스포 행사장에서 아내와 신발 깔창과 구두를 팔아 번 돈 8만여원을 소아백혈병환자에게 써달라고 보냈던 사연이다.
할아버지의 칭찬편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 동네 사는 아주머니를 소개한 '정신지체 시숙 돌보는 곽경란 씨'(2005년 6월 3일자), 마산~부곡 직행버스를 운전하며 친절하기로 유명한 '칠순 할아버지께 칭찬편지 받은 버스기사 정창호 씨'(2005년 11월 18일자)에 이어 세 번째.
이발관을 찾았다. 부곡온천 중앙상가 2층에 있는 중앙이용원을 25년째 운영해오고 있는 장신길(65) 씨가 주인공. 편지 받고 왔다는 말에 쫓겨나기 직전까지 갔다. 그래도 먼 길 왔다는 말에 커피는 한 잔 하고 가란다. 그대로 눌러 앉았다.
기다리는 할아버지들께 얼마나 된 단골인지 여쭸다. 밀양 무안면에서 오신 85세 할아버지는 15년째라고 했다. 부곡면에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길곡·계성면에서부터 밀양 무안·초동면에서도 온단다.
장신길 씨는 "우리 집에 모두 커피 자시로 온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할아버지는 "그런 것도 있지. 나는 그래서 온다. 다방 가면 1000원씩이나 하는데"라고 했다.
또 옆에 분은 "이번에 이 양반이 부곡면 사창리 이장님이 됐다"며 "책임자가 되려면 몇 년 동안 논두렁 매도 안 되는 데 얼마나 잘했기에 동민들이 뽑아줬겠나"라고 칭찬을 했다.
오고 가는 이야기 속에 몇 번 웃음이 터지자 장신길 씨는 취재하러 온 이를 쫓아낼 생각을 접은 모양이다.
아버지는 일본에 돈 벌러 가시고 한학자인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6남매 중에 셋째로 초등학교 졸업하고 농사일을 시작했단다. 그의 말대로 열일곱 되던 해에 호미자루 던져버리고 서울로 갔다. 그 때 배운 이발기술이 그의 직업이 됐다.
부곡온천이 잘 될 때는 퇴폐이발소도 많았단다. 그래도 그는 그렇게 돈을 벌지 않았다. "아가씨들 데려다 놓은 데는 돈을 긁었어. 그래도 그렇게는 하기 싫었지." 그렇게 돈 벌어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싶지 않았단다. "우리 세대는 자식들 눈 뚫어주는 것이 삶의 목표였는데 사실 공부시키려면 간이 빠진다." 5남매 중에서 아들 둘이 아직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겉보기는 50대인 그는 직접 염색도 하고 나름대로 관리를 한단다. 그는 "남의 아름다움을 가꿔주는 사람인데 내가 추잡하면 되겠느냐"며 "어른들 앞에서 보얀 머리를 하면 욕 듣는다"고 했다. 바쁘게 사는 게 건강비결이라고 했다. 새벽부터 문을 열고 저녁 8∼9시까지 일을 하는데도 크게 아픈 적도 없단다.
오랫동안 멀리서도 찾아올 정도로 단골 관리를 어떻게 할까. 남자들도 미장원으로 몰리면서 이발소 찾는 사람은 갈수록 줄고 있다.
그가 말하는 단골관리는 '대화', 그 다음이 커피다. "통하는 맛이 있어야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맺은 정은 못 끊어. 밥을 매일 사줘 봐라 이발하러 오는지."
그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직접 모시러 간다. 골짜기도 마다 않는다. "몸 성할 때 오신 분들 외면하면 안되지. 죽을 때까지 단골이야." 오후에도 길곡면으로 한 분 모시러 간다고 했다.
그는 이발소 문을 닫으면 하고 싶은 일이 또 하나 있다. 평생 가위를 놓지 않을 작정이다. 가방에 이발도구를 넣고 동네마다 경로당을 찾아다니며 이발봉사를 할 생각이다.
"내 부모, 형제나 마찬가지야. 특별히 이발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적게 받은 것도 아닌데 주위에서 계속 찾아오시는 어른들이 있어서, 그 바람에 내가 먹고살고 자식들 공부시켰어. 그분들께 보답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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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으로 들어서자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침샘을 자극합니다. '쿠키데이'라는 가게 이름을 읽었을 때부터 벌써 과자 향이 그려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자 만드는 주방은 바빴습니다. 큰 탁자를 중심으로 둘러선 9명의 손은 바빴습니다. 경남
진해시 이동 소방서 근처에 자리 잡은 '쿠키데이'는 진해지역자활센터가 운영하는 여러 사업단 중 하나입니다.
 

 지난 8월 중순에 문을 열어 장사한 지도 석 달을 채워갑니다. 센터는 지난해 2월부터 과자전문점을 준비해왔습니다. 여섯 달 동안 이론 공부에 직접 과자를 만들고 견학도 다녔다지요. 그런 과정을 거쳐 지난해 여름부터 과자를 만들어 팔았고 올여름에 정식 매장을 열었습니다.

진해자활센터 과자전문점 쿠키데이 식구들.

 쿠키데이 준비부터 지금까지 일을 해 오는 박정옥(43) 단장은 지난 석 달 동안 꾸준히 매출이 오르고 있다고 전했습다. 한 달 매출은 평균 200만 원,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며 뿌듯해했습니다. 매장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답니다. 이 집 과자가 맛있다는 소문이 손님들 발걸음을 이끈 모양입니다.
 
  박 단장은 "진해사람 우리 과자 다 먹어봤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절반을 먹어 봤을 겁니다. 많이 알리고 다닌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기적으로 납품하는 어린이집도 있답니다.
 
  그러나 앞으로가 문젭니다. 자활사업이 스스로 먹고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주고자 시작된 것이니 쿠키데이도 그런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게 과제입니다.
 

 쿠키데이에서 일하는 이는 박 단장을 비롯해 40~50대 9명, 여자 7명에 청일점 2명입니다. 박 단장은 진해시 사회복지사 소개로 자활센터를 알게 됐고 쿠키데이를 이끌게 됐답니다. 자신은 단장이 아니라 팔 힘이 세다는 이유로 맡게 된 '청소반장'이라며 부끄러워 하더군요.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쿠키데이를 준비하면서 제과 자격증을 딸 정도로 열성을 쏟았거든요.
 

 9명 각자 맡은 일이 정해져있습니다. 재료 양을 조절하는 '계량'에서부터 '믹싱(섞기)', 모양내기, 오븐, 포장, 배달 등이다. 모양내기 과정에서는 '달인' 2명의 지도에 따라 모두 달라붙습니다.
 

 박 단장은 쿠키데이 과자에 대한 경쟁력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익을 많이 남기려고 문을 연 가게가 아니어서 재료 속이거나 줄이는 일은 없다. 재료만큼은 원재료 그대로 씁니다." 그렇다고 가격을 비싸게 받는 것도 아니고 양이 적은 것도 아닙니다.
 

 구워낸 과자는 10일 안에 팔리지 않으면 처분합니다. 오랫동안 보관하도록 하는 방습제도 포장지에 넣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활사업으로 과자전문점을 선택한 이유 중 보관기간이 길다는 것도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유통기한을 짧게 잡았어요. 먹어본 손님들은 맛이 다르다고 알더라고요."

 만들어 내는 과자종류만도 15가지. 시행착오도 겪었습니다. 재료 섞는 순서가 틀리거나, 반죽 시간을 놓치거나, 새까맣게 탄 과자를 오븐에서 꺼내기도 했습니다. 도공이 도자기 빚어내는 과정에 빗대면 과장일까요. 초보자들이 나름대로 용을 쓴 셈입니다.
 
   맛에 대한 검정도 철저했습니다. 진해종합사회복지관 식구들의 까다로운 시식 평가도 거쳤거든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신제품도 계속 개발하고 있답니다. "우리는 대량생산 단계가 아니니까 남는 시간에 연구에 집중합니다." 새로 나온 책은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속독을 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는 평소 수다 같지만 진중한 연구에 각자 기를 쏟는 것이죠. 손발도 척척 맞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자가 아니라 떡을 구워낼 겁니다. 박 단장은 "만들어보자고 결정한 과자가 생각대로 만들어지면 뿌듯하죠. 단지 이론만 가지고 초보자들끼리 모여서 과자를 척척 만드니 얼마나 즐겁겠어요"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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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에서 바라본 지심도, 오른쪽에 보이는 바위절벽이 '마끝'.

마음을 닮은 섬 지심도. 하늘에서 보면 섬 모양이 꼭 마음 심(心) 자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거제도 장승포에서 배로 20분이면 닿은 섬이지만 울창한 원시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것도 아름드리 동백나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동백 숲 터널을 거닐 수 있는 남다른 섬이다. 그래서 지심도 앞에 붙는 또 하나의 이름이 동백섬이다.

                        지심도 지도, 꼭 마음 심자를 닮았다.(좌우로 뒤집은)

이 섬에서 마음 다스리고 비우는 매력에 빠져버린 이영구(44) 씨. 그가 이 섬에 둥지를 틀고 '지심도 지킴이'로 살아온 지 꼭 10년째다. 그가 이 섬에 마음을 심은 것은 세상살이에 찌든 몸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유람선회사 영업부장일을 12년 동안 했는데 손발이 저린 병이 났습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지심도로 들어왔죠." 관광지로 '외도'가 알려지면서 엄청난 인파가 전국에서 몰려들었던 시기다. 그는 "외도 수용인원이 하루 4500명인데 7000명씩이나 몰리니 눈코 뜰 새 없었다"라며 "몸에 이상도 생기고 아내에게 누누이 '쉬고 싶다'는 말을 실행으로 옮긴 거죠"라고 말했다.

                        지심도 지킴이 이영구 씨. 탁 트인 너른 바다가 보인다.

부친이 하던 어장이 가까운 곳에 있어 오가며 봐왔던 섬이었다. 10살 때 어장 일을 나가다 대나무를 구하러 내렸던 것이 지심도와 첫 만남이었다. 5형제 중에서 셋째인 그는 대학입학 후 뭍으로 나가면서 어장 일을 놓았다. 어릴 때부터 신물 나도록 뱃일을 했단다. "노 젓는 배로 어장에 다녔는데 얼마나 힘들었던지 어른이 되면 바다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맘먹었어요." 그랬던 그가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매일 바다를 보고 살아야 하는 섬에 눌러앉은 것이다.

지심도는 너비 500m, 길이 1.5㎞, 섬 둘레 3.7㎞의 자그만 한 섬이다. 15집이 모여 사는데 대부분 민박을 한다. 기록에는 조선 현종 때 15가구가 이주해 살았다고 돼 있다. 거제도가 바라다보이는 곳에 옹기종기 집이 모여 있고 등진 비탈 너머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쪽빛 바다로 아득한 수평선이 끝이 없다.

                        영구 씨가 운영하는 민박집 동백하우스.

그는 지심도에서 맞은 첫날밤 하늘에 그렇게 많은 별을 처음 봤단다. 쏟아져 내리는 수많은 별을 보면서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겠다던 생각이 바뀌었단다.
그 얼굴에는 즐거움이 묻어난다. 갈지 자 산책길을 따라 섬을 안내하면서 군데군데 보은 쓰레기를 줍는 모습은 이 섬을 사랑으로 만지는 듯하다. 민박집을 열어놓고 있지만 업이라기보다는 손님과 함께 즐기기 위한 것이다. 외도를 오가는 유람선을 한 대 운영하는데 그 수입을 이 섬에 투자하는 셈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천재는 노력하는 이를 이길 수 없고, 즐기는 사람을 누구도 못 이깁니다."

                        지심도에서 바라 본 장승포.

지심도에 아름다움만 있지는 않다. 일제강점기 아픈 상처를 품은 곳이다. 태평양에서 들어오는 배와 비행기를 공격하고 방어하는 요새였다. 일본군이 주둔했던 흔적이 곳곳에 아직 남아있다. 나무로 된 일본군 막사도 있고, 땅바닥에 둥그런 콘크리트구조물은 포가 있던 자리다. 포진지 옆에는 탄약고도 그대로다. 산등성이에는 잘 가꿔진 잔디밭도 있는데 경비행기 활주로였단다.

지금까지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된 것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인데다 국방부 땅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아름드리 동백나무는 잘려나가고 또 다른 시멘트 덩어리들이 덩그러니 들어섰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지심도를 '제2의 외도'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외도와는 달라야 한다"라며 "원시림을 그대로 보전하면서 많은 사람이 이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런 노력 덕에 섬에 나무로 된 전망대도 생겼다. "국립공원에서 전국에 있는 섬 중에서 투자한 곳은 지심도가 처음일 겁니다."

                        지심도 지킴이 이영구 씨가 쪽빛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는 지심도에 자전거와 해적선을 들여놓고 싶어 한다. 자전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것이다. 지심도를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해적선으로 꾸민 유람선을 보러 일본까지 다녀왔단다. 이런 것들이 그의 즐기는 삶을 살찌우는 즐거운 상상이다. 그런 꿈이 그를 지치지 않고 지심도를 지키도록 한 모양이다. 그는 "찾아오는 손님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제 즐거움은 다섯 배가 됩니다"라고 했다.

찌든 때 날려버리고 깨끗한 마음만 가지고 돌아오고 싶어 찾는 섬. 그 섬에 가면 지심도 지킴이 이영구 씨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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