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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향

마을회관 지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어

그때그사람-이발사 이장님 장신길씨(경남 창녕군 부곡면 사창리)

 이발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똑같다. 석유난로와 이발소 특유의 향이 어우러진 그대로다. 이발하러 온 이들도 연세 높은 어르신들뿐이었다. 경남 부곡온천 중앙상가 2층 중앙이용원, 지난해 2월 만났을 때 25년째 이발사를 해왔으니 올해는 26년으로 늘었을 뿐이다. 창녕군 부곡면 사창리 이장님이기도 한 장신길(66) 씨를 다시 찾았다.

마을회관 짓는다고 신경을 많이 써서 더 늙었다는 이발사 이장님 장신길 씨.

 머리카락 까맣게 물들여 50대로 보이도록 '속인' 모습도 그대로였다. 의장대를 했을 정도로 훤칠한 키도 날씬한 몸매도 여전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기자를 반겼다는 것만 바뀌었다.

  지난번 취재 때는 쫓겨날 뻔했었다. 먼 길 왔다며 능청 떨며 단골에게 타주는 커피까지 얻어 마시면서 눌러앉아야 했던 그때와는 분명히 달랐다. 반갑다며 청한 악수에 '또 쫓겨나는 것 아닐까'하는 긴장은 풀렸다.
 
  이장님을 다시 찾은 건, 큰일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부곡면 사창리 숙원사업이었던 마을회관을 다지어 마을잔치를 벌인단다.
 
  "멋진 모습 그대로시다"라니 돌아오는 말은 "신경 쓸 일이 많아서 다 늙었붙다." 75가구 챙기고, 면사무소 회의 다니면서 마을에 방송하는 일은 별일 아닌데 안 하던 일을 하니 그렇단다. '안 하던 일'이란 게 바로 마을회관 지은 것 두고 한 말이다.

 "성격이 그래서 그런지 하나라도 잘하고 싶고 뭐 하나 남기고 싶은데, 글이 길면 글로 하겠지만 글도 짧제, 배운 거도 없제, 그러니 더 그렇지." 6남매 중에 셋째였던 그는 초등학교 공부가 끝이었다. 나이 먹고 이장일도 싶지 않았다. 지금은 나이 많은 후배가 한 명 생겼지만 부곡면 이장 중에서 나이는 제일 많지만 이장경력은 '1학년'으로 제일 짧았다.
 
 경력 짧은 이장이 애살스럽게 일을 차곡차곡 해냈다. 1970년대 마을 사람들이 새마을 운동 때 직접 블록 찍어서 지었던 회관 헐고 빨간 벽돌 회관을 새로 지었다. 옛 회관이 있던 터(200㎡)가 이장님 할아버지가 마을에 내놓았던 것인데 이번에 주변 터 400㎡를 마을기금으로 사들였단다.

 회관 앞마당에는 느티나무 한그루도 심었다. 6남매 중 유일하게 생존한 일본에 사는 삼촌이 기증한 나무다. "한 달 전에 성묘 다니러 오신 삼촌께 '마을회관도 새로 짓는데 좋은 거 표시 하이소'했지. '뭐하면 좋겠노' 해서 나무 한 그루 심자고 했다 아이가." 물건이야 낡으면 부서지고 버리면 잊히지만 나무는 자라서 동네 사람 땀 식혀주고 그늘이 돼 오래오래 남는다는 뜻이다. 정자나무가 될 나무인 셈이다.

 그 앞에 선 표지석 문구가 멋지다. 'One For All, All For One', "삼촌이 문구에 딱 크기까지 정해서 보낸 대로 했지." 20일 마을회관 낙성식을 앞두고 잔치준비도 바쁘다. 이장님은 "동네잔치만 하면 되나 군수, 도의원, 군의원 다 모셔야지. 마을회관 짓는데 손 내밀 때 있나. 군의원, 도의원 찾아가서 짤았지"라고 했다. 사창리 마을회관 짓는 데 건축비만 8800만 원이 들었다. 모두 군에서 도에서 지원받은 돈이다.

 "군청에 수도 없이 쫓아다녔다. 내 장가가서 새살림 차리는 거보다 더 힘들더만. 돈은 나라에서 주고 건물은 공사하는 사람이 다지었지만 신경은 많이 쓰이데." 건설자재가가 올라 일이 털어지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자기 돈으로 자기 집 짓기도 어려운데 나랏돈으로 마을회관 짓기 쉽겠나'. 고생했다는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번듯하게 마을회관을 지었으니 2년 임기 깨끗하게 마치고 싶단다. 올 연말에 후임 이장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장님 바람은 변함없다. 이발소 문 닫으면 가방에 이발도구 넣고 동네마다 찾아다니며 이발 봉사하는 것이다. '그 꿈 언제 실행에 옮기느냐'라고 묻자 대학원 다니는 아들 뒷바라지만 해놓고 나서란다.

 "공부시키는 놈 있으니 그때까지는 해야 한다. 그거 끝나고 나면 내 먹고살고 애들 공부시키게 해준 어른들 찾아다니겠다는 약속은 꼭 지켜야지." 





 

25년째 이발관 운영해 온 장신길씨 
"단골관리 비결? 뭐, 정이지요"...커피 한잔·대화 나누는 정 멀리서 찾아오는 이 많아 
 
 2007년 02월 15일
"이 늙은이가 본대로 말씀드릴게요. 나이가 많은 늙은 영감이 다리가 불편해서 이발하러 가고 싶어도 못 간다는 전화가 오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꼭 데리러 간답니다. 이발요금 9000원 받겠다고 10분이고 20분이고 시간을 허비하면서 그렇게 합니다."
 창녕 부곡 거문리에 사는 칠순 노인이 보낸 편지 내용이다. 편지지 11장에는 구구절절 이발사를 칭찬하는 글로 가득했다. 이 편지를 보낸 이는 지난해 5월 '부곡 할매표식 사랑 전하는 이정수·강미진 노부부'라는 기사에 소개됐던 이정수 할아버지. 고성공룡엑스포 행사장에서 아내와 신발 깔창과 구두를 팔아 번 돈 8만여원을 소아백혈병환자에게 써달라고 보냈던 사연이다.
할아버지의 칭찬편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 동네 사는 아주머니를 소개한 '정신지체 시숙 돌보는 곽경란 씨'(2005년 6월 3일자), 마산~부곡 직행버스를 운전하며 친절하기로 유명한 '칠순 할아버지께 칭찬편지 받은 버스기사 정창호 씨'(2005년 11월 18일자)에 이어 세 번째.
이발관을 찾았다. 부곡온천 중앙상가 2층에 있는 중앙이용원을 25년째 운영해오고 있는 장신길(65) 씨가 주인공. 편지 받고 왔다는 말에 쫓겨나기 직전까지 갔다. 그래도 먼 길 왔다는 말에 커피는 한 잔 하고 가란다. 그대로 눌러 앉았다.
기다리는 할아버지들께 얼마나 된 단골인지 여쭸다. 밀양 무안면에서 오신 85세 할아버지는 15년째라고 했다. 부곡면에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길곡·계성면에서부터 밀양 무안·초동면에서도 온단다.
장신길 씨는 "우리 집에 모두 커피 자시로 온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할아버지는 "그런 것도 있지. 나는 그래서 온다. 다방 가면 1000원씩이나 하는데"라고 했다.
또 옆에 분은 "이번에 이 양반이 부곡면 사창리 이장님이 됐다"며 "책임자가 되려면 몇 년 동안 논두렁 매도 안 되는 데 얼마나 잘했기에 동민들이 뽑아줬겠나"라고 칭찬을 했다.
오고 가는 이야기 속에 몇 번 웃음이 터지자 장신길 씨는 취재하러 온 이를 쫓아낼 생각을 접은 모양이다.
아버지는 일본에 돈 벌러 가시고 한학자인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6남매 중에 셋째로 초등학교 졸업하고 농사일을 시작했단다. 그의 말대로 열일곱 되던 해에 호미자루 던져버리고 서울로 갔다. 그 때 배운 이발기술이 그의 직업이 됐다.
부곡온천이 잘 될 때는 퇴폐이발소도 많았단다. 그래도 그는 그렇게 돈을 벌지 않았다. "아가씨들 데려다 놓은 데는 돈을 긁었어. 그래도 그렇게는 하기 싫었지." 그렇게 돈 벌어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싶지 않았단다. "우리 세대는 자식들 눈 뚫어주는 것이 삶의 목표였는데 사실 공부시키려면 간이 빠진다." 5남매 중에서 아들 둘이 아직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겉보기는 50대인 그는 직접 염색도 하고 나름대로 관리를 한단다. 그는 "남의 아름다움을 가꿔주는 사람인데 내가 추잡하면 되겠느냐"며 "어른들 앞에서 보얀 머리를 하면 욕 듣는다"고 했다. 바쁘게 사는 게 건강비결이라고 했다. 새벽부터 문을 열고 저녁 8∼9시까지 일을 하는데도 크게 아픈 적도 없단다.
오랫동안 멀리서도 찾아올 정도로 단골 관리를 어떻게 할까. 남자들도 미장원으로 몰리면서 이발소 찾는 사람은 갈수록 줄고 있다.
그가 말하는 단골관리는 '대화', 그 다음이 커피다. "통하는 맛이 있어야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맺은 정은 못 끊어. 밥을 매일 사줘 봐라 이발하러 오는지."
그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직접 모시러 간다. 골짜기도 마다 않는다. "몸 성할 때 오신 분들 외면하면 안되지. 죽을 때까지 단골이야." 오후에도 길곡면으로 한 분 모시러 간다고 했다.
그는 이발소 문을 닫으면 하고 싶은 일이 또 하나 있다. 평생 가위를 놓지 않을 작정이다. 가방에 이발도구를 넣고 동네마다 경로당을 찾아다니며 이발봉사를 할 생각이다.
"내 부모, 형제나 마찬가지야. 특별히 이발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적게 받은 것도 아닌데 주위에서 계속 찾아오시는 어른들이 있어서, 그 바람에 내가 먹고살고 자식들 공부시켰어. 그분들께 보답은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