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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향

마음 닮은 섬, 지심도

                         배에서 바라본 지심도, 오른쪽에 보이는 바위절벽이 '마끝'.

마음을 닮은 섬 지심도. 하늘에서 보면 섬 모양이 꼭 마음 심(心) 자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거제도 장승포에서 배로 20분이면 닿은 섬이지만 울창한 원시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것도 아름드리 동백나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동백 숲 터널을 거닐 수 있는 남다른 섬이다. 그래서 지심도 앞에 붙는 또 하나의 이름이 동백섬이다.

                        지심도 지도, 꼭 마음 심자를 닮았다.(좌우로 뒤집은)

이 섬에서 마음 다스리고 비우는 매력에 빠져버린 이영구(44) 씨. 그가 이 섬에 둥지를 틀고 '지심도 지킴이'로 살아온 지 꼭 10년째다. 그가 이 섬에 마음을 심은 것은 세상살이에 찌든 몸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유람선회사 영업부장일을 12년 동안 했는데 손발이 저린 병이 났습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지심도로 들어왔죠." 관광지로 '외도'가 알려지면서 엄청난 인파가 전국에서 몰려들었던 시기다. 그는 "외도 수용인원이 하루 4500명인데 7000명씩이나 몰리니 눈코 뜰 새 없었다"라며 "몸에 이상도 생기고 아내에게 누누이 '쉬고 싶다'는 말을 실행으로 옮긴 거죠"라고 말했다.

                        지심도 지킴이 이영구 씨. 탁 트인 너른 바다가 보인다.

부친이 하던 어장이 가까운 곳에 있어 오가며 봐왔던 섬이었다. 10살 때 어장 일을 나가다 대나무를 구하러 내렸던 것이 지심도와 첫 만남이었다. 5형제 중에서 셋째인 그는 대학입학 후 뭍으로 나가면서 어장 일을 놓았다. 어릴 때부터 신물 나도록 뱃일을 했단다. "노 젓는 배로 어장에 다녔는데 얼마나 힘들었던지 어른이 되면 바다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맘먹었어요." 그랬던 그가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매일 바다를 보고 살아야 하는 섬에 눌러앉은 것이다.

지심도는 너비 500m, 길이 1.5㎞, 섬 둘레 3.7㎞의 자그만 한 섬이다. 15집이 모여 사는데 대부분 민박을 한다. 기록에는 조선 현종 때 15가구가 이주해 살았다고 돼 있다. 거제도가 바라다보이는 곳에 옹기종기 집이 모여 있고 등진 비탈 너머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쪽빛 바다로 아득한 수평선이 끝이 없다.

                        영구 씨가 운영하는 민박집 동백하우스.

그는 지심도에서 맞은 첫날밤 하늘에 그렇게 많은 별을 처음 봤단다. 쏟아져 내리는 수많은 별을 보면서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겠다던 생각이 바뀌었단다.
그 얼굴에는 즐거움이 묻어난다. 갈지 자 산책길을 따라 섬을 안내하면서 군데군데 보은 쓰레기를 줍는 모습은 이 섬을 사랑으로 만지는 듯하다. 민박집을 열어놓고 있지만 업이라기보다는 손님과 함께 즐기기 위한 것이다. 외도를 오가는 유람선을 한 대 운영하는데 그 수입을 이 섬에 투자하는 셈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천재는 노력하는 이를 이길 수 없고, 즐기는 사람을 누구도 못 이깁니다."

                        지심도에서 바라 본 장승포.

지심도에 아름다움만 있지는 않다. 일제강점기 아픈 상처를 품은 곳이다. 태평양에서 들어오는 배와 비행기를 공격하고 방어하는 요새였다. 일본군이 주둔했던 흔적이 곳곳에 아직 남아있다. 나무로 된 일본군 막사도 있고, 땅바닥에 둥그런 콘크리트구조물은 포가 있던 자리다. 포진지 옆에는 탄약고도 그대로다. 산등성이에는 잘 가꿔진 잔디밭도 있는데 경비행기 활주로였단다.

지금까지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된 것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인데다 국방부 땅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아름드리 동백나무는 잘려나가고 또 다른 시멘트 덩어리들이 덩그러니 들어섰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지심도를 '제2의 외도'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외도와는 달라야 한다"라며 "원시림을 그대로 보전하면서 많은 사람이 이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런 노력 덕에 섬에 나무로 된 전망대도 생겼다. "국립공원에서 전국에 있는 섬 중에서 투자한 곳은 지심도가 처음일 겁니다."

                        지심도 지킴이 이영구 씨가 쪽빛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는 지심도에 자전거와 해적선을 들여놓고 싶어 한다. 자전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것이다. 지심도를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해적선으로 꾸민 유람선을 보러 일본까지 다녀왔단다. 이런 것들이 그의 즐기는 삶을 살찌우는 즐거운 상상이다. 그런 꿈이 그를 지치지 않고 지심도를 지키도록 한 모양이다. 그는 "찾아오는 손님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제 즐거움은 다섯 배가 됩니다"라고 했다.

찌든 때 날려버리고 깨끗한 마음만 가지고 돌아오고 싶어 찾는 섬. 그 섬에 가면 지심도 지킴이 이영구 씨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