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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이

미당을 키운 바람과 그가 돌아간 질마재


전라도 여행에서 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서정주의 글을 보면서. 국민 애송시라는 <국화옆에서>가 어렴풋했지만 그의 시를 보면서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는 느낌은 새롭다. 아름다운 글이 친일과 독재를 찬양하는 데 쓰였으니 안타깝다. 서정주의 글과 삶이 근현대사 아픔을 상징하고도 남는다.

그가 태어나고 이 세상을 떠나 땅 속에 묻힌 곳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묻닫은 작은 학교를 고쳐 가꾼 미당시문학관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선운사 아래서 하룻밤 잔 덕에 <선운사 동구>라는 시가 눈에 들어온다.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
작년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문학관 옥상에서 그가 보낸 유년시절을 더듬을 수 있는 마을 전경, 바다와 갯벌을 사이에 두고 멀리 부안군이 보인다. 들과 바다가 보이는 쪽 옥상 담에 이렇게 적혀있다. "스물 세햇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그의 시 <자화상>에 한 부분이다. 그리고 뒷쪽으로 지난 2000년 12월 여든 다섯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 묻힌 질마재가 보인다.  그곳에는 시 <영산홍>의 '영산홍 꽃잎에는 산이 어리고 산자락에 낮잠 든 슬픔 소실댁'이라고 새겨져 있다.


시대의 굴곡에서 글로 살아갔던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아름다움은 부정할 수 없으나 그에 담긴 생각이 문제일 것이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오장 마쓰이 송가>라는 친일시다. 그에 대한 친일 비판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계속된다. 문학관에는 그가 썼던 친일 글이 걸려 있다.

또한, 그의 변명도 걸려있다. 그는 '종천순일파'라고 했다. 하늘의 뜻을 따랐을 뿐이라고 한다. 사람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기 세계가 강할수록 더 그렇다. 자기 변명을 만들어 내는 기술도 뛰어나다. 자신뿐만 아니라 그시대를 같이 산 이들까지 걸고 넘어지는 부분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두고 두고 평가될 것이다. 이처럼 글은 무섭다. 글은 역사의 기록일뿐만 아니라 글쓴이의 흔적이다.

온통 국화꽃으로 꾸며진 돋음볕마을, 문학관에서 멀지 않다. 소쩍새 그렇게 울지 않아도 1년 내내 국화꽃이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