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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이

센터에 가면

센터에 가면 |삐딱이

마산 3·15회관의 이름이 '3·15 아트센터'로 정해졌답니다.
왜 하필 '아트센터'일까요. 갸우뚱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좀 있어 보입니까.
'국제화시대에 걸맞는, 창원에 성산아트홀도 있는데 뭐, 마산에도 아트 머시기가 있으면 좋지' 하고 말 문제는 아닙니다.

한자어인 '예술'이나 영어인 '아트'가 뭐가 차이가 나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세상이 영어를 붙여야 있어 보이는 시대가 됐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세상은 이미 이런 식으로 변했습니다.

길거리 가게나 기업 등 민간뿐만 아니라 이미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영어 쓰기를 주도하고 있는 꼴입니다.
행정자치부는 지난 8월 전국 145개 시구의 2166개 동사무소의 이름을 '동주민센터'로 바꾼다고 발표했고, 지금쯤 다 바뀌었을 것입니다. 제가 사는 진해시 태백동사무소도 '태백동주민자치센터'라고 박힌 동판이 붙어 있더군요.
굉장한 발상에 굉장한 변화 아니겠습니까. 한쪽에서는 예쁜 한글간판을 뽑아 상을 주고 한쪽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외래어를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센터'라고 하면 무슨 뜻일까요. 행자부는 지난 8월 '주민센터'로 바꾼 이유에 대해 "부르기 쉽고, 주민 중심의 통합서비스 제공기관임을 쉽게 인식할 수 있는 명칭"이라고 했습니다. 참 가당찮습니다.
그래서 영어사전을 뒤져 봤습니다. 쉽게 말해서 '한복판'으로 아는 'center'에 다른 뜻이 있는지. '사람이 모이는 중심지, 사회사업 등의 종합시설'이라는 뜻이 있더군요.
경남도민일보 홈페이지에서 기사 찾기에 '센터'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봤습니다. 수도 없이 쏟아지더군요. 그만큼 '센터'는 우리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경상대 암센터, 고성군문화체육센터, 경남지역환경기술개발센터, 창원켄벤션센터, 비전사업본부, 의령군민체육센터, 양산여성복지센터, 거제시자원봉사센터, 창원병원 재활전문센터, 농업기술센터, 경남가정위탁지원센터, 범죄피해자지원센터, 경남도여성능력개발센터, 천주교 마산교구 창원이주민센터, 프레스센터, 경찰청 교통정보센터, 112신고센터, 경찰청선거사범신고센터,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119안 전 센터……. 끝도 없습니다.

민간, 자치단체, 시민단체, 종교기관, 경찰 등등 구분이 없습니다.
정부도 문제지만 이미 자치단체는 경쟁적으로 외래어 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경남의 20시군 누리집에 들어가 봤습니다. 참고로 경남은 '필 경남'입니다. 느껴지십니까. 느낌이 오나요.
드림베이 마산, 블루시티 거제, 액티브 양산, 점프 부자 창녕……. 무슨 뜻인지 다 아시죠. 이렇게 이름을 지어놓고 무슨 무슨 뜻이 있다고 설명들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은 어떻습니까. 환경수도 창원, 참 진주, 공룡나라 고성, 보물섬 남해. 쉽고 더 와 닿는다고 하면 주관적인 평가일까요. 경남도는 친환경농산물 상표를 개발했는데 그 이름이 <I'm Green>이라고 25일 밝혔니다. 덧붙은 문구가 '천적이 만들어준 경남 농산물'입니다.

이런 흐름은 세계화를 주창한 문민정부 이후였을 겁니다. 외환위기와 시작한 국민의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기업들 이름을 모두 영어로 바꾸는 게 대세였죠. 그래야, 세계에 진출할 수 있다나.
참여정부는 더 했습니다. '산업클러스터'니 '로드맵'이니 외래어를 끌어다 세상을 변화시킨답시고. 산업집적화와 산업클러스터의 차이가 있을까요(클러스터는 영어로 포도 등의 송이를 일컫습니다). 클러스터는 더 첨단이고 로드맵은 노선보다 더 깊고 치밀한 내용이 담겼을 것 같습니까.

다시 '센터'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아름다운 우리 말글을 가꾸고자 노력하는 시민단체 '한글문화연대'는 얼마 전에 동주민센터로 바꾸는 것과 관련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12월 7일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행자부의 '센터'로 이름 바꾸기 찬반을 물었습니다.
그 결과, 58.9%가 외래어 대신 우리말 용어로 바꾸는 것이 좋다고 했답니다. 이 조사에서 눈여겨 볼만한 게 20~30대, 수도권, 고소득, 대학생과 사무직, 대졸자일수록 주민센터 명칭에 대한 찬성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먹물'들의 허위의식으로 몰아붙이면 너무할까요.

그렇다면, 이쯤에서 한글문화연대는 대안을 갖고 반대운동을 하는지 궁금해질 겁니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 담당자에게 물어봤습니다.
좋은 이름이 있더군요. 내부적인 대안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무슨 '동누림터'. '누리다'와 세상을 뜻하는 '누리'도 담겨있습니다. 여기에 '터'를 붙인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그러면서 그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민센터로 바꾸는 2166개 동사무소는 우리나라 초등학교 다음으로 많은 공공기관이다." 이 정부의 역작이라고 해도 될 겁니다.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공공기관의 이름을 외래어로 바꿔버렸으니.

센터에 가서 수용하고 운동하고, 센터에가서 행정처리하고, 센터에서 가서 공부하고, 센터에서 가서 밥먹고, 센터에서 영화보고, 놀고, 센터에 가서 친구만나고.....

센터에 가면 뭐든 해결되는 세상입니다.

2007.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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