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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이

장애극복 못하면 '루저'인가


오늘 중앙일보 사회면을 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목을 보면 이렇습니다. <성한건 머리, 두 손가락 ...  그 몸으로 따낸 자격증 9개 / '장애극복 최고 공무원' ○○○씨 >
여러분은 이런 기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이 분은 '대한민국 최고기록 공무원' 중 '장애극복 분야 최고'에 뽑혔습니다. 행정안전부에서 주최한 공모라고 합니다.

당연히 그분의 삶이 존경스럽죠. 그러나 이게 개인만의 문제일까요. 과연그럴까요. 촌 출신이 서울대 합격했다는 기사는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 있긴 있죠. 몰지각한 언론사나 기자들이나 그런 보도를 하죠. 빈익빈 부익부가 교육에도, 가난이 대물림되는, 부자 자녀들이 서울대 합격율을 대부분 점하는 그런 현실에서.

촌에서도 열심히 하면 서울대 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줄까요. 교육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억누르는 도구로 사용될까요.

장애극복상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장애인 차별이 아직 만연한, 바뀌지 않는 사회환경에서 장애극복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마찬가지도 장애가 있어도 열심히하면 인생극복, 장애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줄까요. 극복을 하지 못하는 다수는 요즘 유행하는 말 처럼 '루저'인가요. 그러면 이중 억압이겠습니다.

지난 4월 경남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경남도의회 '장애극복상 조례안' 제정을 반대하는 기자회견 모습.


경남에서도 올해 이런 논란이 있었습니다. 지난 4월 경남도의회가 '장애극복상 조례안'을 입법예고 했었습니다. 당시 경남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극복상'이 아니라 '장애인 인권상'을 줘야 한다며 반대했었죠. 논란이 일자 도의회는 조례 이름을 '모범 장애인상'으로 바꿔 통과시키기도 했습니다.

장애극복, 장애극복상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