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지난해 12월 1일에 쓴 것입니다. 국가폭력에 쓰러져 317일 동안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어르신이 돌아가셨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근본적인 물음을 다시 던져봅니다.
'농민을 가장한 농민운동가'. 지난 2003년 8월 경찰이 함안농민회 30대 간부를 불법시위 혐의로 잡아 가두면서 구속영장에 썼던 표현이다. 경찰은 그 근거로 대학 다닐 때 학생운동을 하다 구속됐던 전력을 댔다. 정부가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를 밀어붙이면서 전국에서 농민들 반발은 거셌던 때다.
그러나 젊은 농민회 간부는 대학 시절 구속 건에 대해 이미 사면·복권, 민주화 운동 인정을 받았었다. 그리고 3000평 수박농사를 지으며 농민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활동하고 있었다. 농민들은 젊은 농사꾼에게 '위장농민'이라는 불온딱지를 붙여 구속한 데 대해 분개했다. 그때 젊은 농민은 진보정당 소속으로 출마해 지난 2010년 군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공안당국의 시각은 바뀌지 않았다. 법 정의를 말하는 권력자에게는 헌법이 보장한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정권은 오로지 저항세력을 체제에 불응하는 불순분자, '빨갱이'로 볼 뿐이다.
그러니 '맘대로 해고', '평생 비정규직'을 만드는 노동개악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농산물 값 폭락에 못살겠다는 농민들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시민이 시위한다고 물대포를 직사해버리지 않았는가. 지난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때 전남 보성에서 농사짓는 백남기 어르신은 그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사과하는 이가 없다. 인간에 대한 도리가 없는 정권이다. 그런 기본이 있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테지만. 오히려 으름장을 놓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복면금지법 필요성을 강조하며, 시위 참가자들을 IS(이슬람국가)에 빗대기도 했다.
지난달 전국 각지에서 10만 명이나 서울에 모인 이유에 대해서는 권력자가 모르는지 모른 척하는지. 그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복면 뒤 얼굴만 궁금해한다. 민주주의 광장에 모여 시위를 하는 이들을 테러분자로 몰아세우기만 한다. 시위자들의 복면을 벗기려 하기 전에 공권력의 낯짝이나 떳떳하게 드러내야 한다. 밀양 초고압 송전탑 반대 목소리를 내던 주민들을 겁박했던 이들이 누구인가. 경찰이 복면을 쓰지 않았던가. 사복으로 신분을 가리고 무차별 채증을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시위자들 얼굴이 궁금한가.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나온 명대사로 응수하고 싶다. "가면 뒤엔 살덩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신념이 있다.", "그는 나의 아버지였고, 어머니였고, 당신이자 그리고 나였다. 우리 모두다."
이 정권엔 도리나 포용은 손톱만큼도 없다. 이런 생각은 대통령 측근이나 새누리당 고위층의 발언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국정화 반대 목소리에 "반대하는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고 하고, 제주 4·3항쟁 때 대규모 민간인 학살에 대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필요했다"고 한다.
섬뜩하다.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라는 비정상이다. 무서운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 사는 우리는 불행한 국민이다. 누가 복면을 쓰고, 누가 위장을 했는가. '위장 민주공화국' 복면부터 벗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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