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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이

죽은 가축을 위해 제사를 지낸다구요?



경남에도 구제역이 발병했습니다. 두 달가까이 버텨왔는데 설을 앞두고 뚫렸군요. 수많은 가축들이 죽어갈 걸 생각하니 참 마음이 아픕니다. '살처분', 참 무섭지 않습니까. 2008년 10월 22일에 썼던 글을 다시 꺼내 봅니다.


당신은 오늘도 소주 한 잔 하면서 고기 먹었지요? 소주 안주에는 돼지고기 삽겹살이 좋습니다. 불판에 삼겹살 올려놓고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 쏟아냈을 겁니다.

저는 오늘 뜻하지 않은 소식을 받았습니다. 인간들을 위해 죽어간 동물들의 부고. 그 부고를 들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


수혼제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짐승 '수', 귀신 '혼', 제사 '제' 자입니다. 짐승들을 위한 제사라는 뜻이지요.
경남도 축산진흥연구소는 오늘 오후 수혼제를 지냈답니다. (사진은 연구소에서 보내 온 것입니다.)50여 명 직원이 한자리에 모여 인간들을 위해 죽어간 동물들의 영혼을 달랬답니다. 그들은 인간들 제사와 마찬가지로 술과 음식도 올렸습니다.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광우병도 인간들의 욕심이 뿌리입니다. 더 빨리 소고기 처먹을라고 소한테 소고기를 먹이는 만행을 저질러 돌아온 벌이지요. 경남도 축산진흥연구소 직원은 올해 더 마음이 숙연하다고 했습니다. 올해 5월 양산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했습니다. 그 동네 닭들은 다 죽었습니다. 생매장으로. 이 마릿수가 140만 마리. 머릿속에 그려지나요. 그리고 경남에만 매년 식용으로 도축되는 소, 돼지가 160만 마리나 된답니다.

저는 160만 마리가 전국 수치냐고 물었습니다. 경남에서만 도축된 수치라는 이야기를 듣고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이래서는 안 된다
싶었습니다. 죄악입니다. 이럴 진데 소주 한잔 입에 틀어넣으면서 상추쌈에 싼 돼지고기 명복을 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경남 진주시 초전동에 있는 도 축산연구소 앞마당에는 '수혼'이라는 비가 있습니다. 
오늘 제사도 그 비 앞에서 지냈답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70년대쯤 생겼다네요. 자료를 찾아보니 국립수의과학검역원도 올 4월에 동물 위령제를 지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축산연구소에서 일하시는 분들, 그래도 세상에서 가축들을 가장 가까이서 보살피고 그들의 생리를 잘 아시는 분들이죠. 올 양산처럼 조류인플루엔자나, 돼지 콜레라가 생기면 고생하는 분들 중 한 사람들입니다.


마음 아픕니다. 인간들을 위해 태어나 살아가다 뜻하지 않은 병에 걸려 목숨 팔팔한데 생매장돼야 한다는 것. 생명의 소중함을 안고 태어나서 실험대상으로 죽어간다는 것.
배부른 인간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가축들에게도 권리가 있다'. '옴짝달싹 못하는 우리가 아니라 방목을 해야 한다'. 정말 인간 중심적 사고 아니겠습니까.

토종닭 육질이 쫄깃쫄깃하고 맛있다는 그런 이야기가 더 솔직하지 않을까요. 풀어놓고 키운 닭이 낳은 알을 더 비싸게 파는 이 세상입니다. 그러고도 자유롭게 아무 곳에나 알 낳을 수 있는 닭에게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도 몇 년 전 돼지 콜레라 현장에 있어봤지만 몇 날 며칠 아무 죄 없는 짐승들을 생매장해야 한다는 것은 짐승에게나 인간에게 죄악이었습니다. 생매장을 하는 사람들은 너무 괴로워했습니다. 왜냐 그 짐승들 길러온 농민들과 같은 심정이었거든요. 아프면 약주고, 주사 놔주던 이들이었거든요.

먹는 탐욕을 좀…. 먹는 즐거움에서 좀 멀어집시다. 죽어간 짐승들을 생각하며.

오늘 경남도 축산진흥연구소 수혼제 제문입니다.

경남도 축산진흥연구소 직원 일동은 인간에게 희생된 많은 짐승 혼령들과 만물을 다스리시는
영명하신 천지신명께 삼가 고하나이다.

저희를 위하여 고귀한 생명을 바친 금수님이여!
그 희생에 감사하고자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자연 일부분으로 살고 죽는 것은 대자연의 이치에 맞아야 하는 것이 순리이지만,
실험동물의 운명으로 당신의 고귀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니 그 고마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생명에 대한 이해와 각종 질병의 극복, 나아가 인류복지를 위한 당신들의 희생은
이 자리에 모인 저희 연구원들에게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는 귀중한 보탬이 되겠습니다.

모든 생명의 귀중함을 널리 알리고, 각종 질병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미물에게 유익한 보탬을 주는
당신들의 숭고한 생명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는 당신들의 고귀한 희생에 비하면 초라한 정성이지만 뜻하지 않은 운명을 내린
하늘을 원망하지 마옵시고 술과 음식을 정성껏 마련하여 올리시니 음향 하시고
경남도 축산이 만사형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