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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딴지

운문사에는 고춧잎도 남아나지 않는다


지난주 휴가를 냈었습니다. 회사 동료와 셋이서 경북 청도 운문사를 다녀왔습니다. 마산에서 그렇게 멀지 않고, 단풍도 예쁘겠다 싶어 운문사를 여행지로 정했습니다.

몇 번을 다녀왔던 곳이지만 갈 때마다 새롭더군요.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운문, '구름 문'이라는 이름이 더 끌리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구름이 잠시 쉬어가듯이 나도 쉬다 오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었을겁니다.

오랜만에 조용한 길을 걸었더니 마음이 편했습니다. 경내를 둘러보고, 사방을 두리번거리기도 했습니다. 철이 철인지라 관광객이 많더군요. 이번 주는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운문사를 둘러보고 나와 주변 암자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먼발치서 희한한 광경이 들어왔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고춧대. 고추를 다 딴 건 이해가 가는데 고추 이파리도 하나 남지 않은 건 왜일까 싶었습니다. 진짜 앙상한 뼈만 남은 고춧대를 본 것입니다.

운동장 만한 고추밭이 모두 그랬습니다. 멀리 울력을 하는 스님들도 보였습니다. 운문사는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절이기도 합니다. 공부하는 스님들이 점심공양하고 고추밭에서 고춧대를 뽑으며 수행을 했겠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절집에는 고춧잎도 남아나지 않는구나'. 고추나물 맛있잖습니까. 스님들이 고춧잎을 따서 나물로 다 무쳐 드셨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버릴 게 없는데 너무 낭비가 심하다는. 아마 밭에서 뽑아낸 고춧대는 땔감으로 쓰일 것입니다. 버리는 게 하나도 없는 셈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생명은 다 제 쓸모가 있는데 인간들이 문제입니다. 너무 넘쳐서 버리고, 절대 미각을 자부하기도 하지요.

얼마 전에 이사를 했습니다. 제가 천성이 그런지, 촌놈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잘 버릴 줄을 모릅니다. 놔두면 다 쓸모가 있다는 주의에 가깝습니다. 그런 저를 마누라는 지긋지긋해합니다. 가끔 실랑이도 생깁니다.

운문사에 다녀간 세상 사람들도 앙상한 뼈만 남은 고춧대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했을까요.

* 다음은 서비스. 요즘 제 눈에 이런 게 많이 들어옵니다. 반복의 아름다움.

운문사 담벼락입니다. 빗살무니 같죠. 납짝한 돌을 저렇게 쌓으려면...

 

사각과 육각이 반복된 대칭.

기와와 문살과 담벼락의 조화.

생긴 건 조금씩 다르지만 이또한 반복의 아름다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