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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큰 농사꾼을 만나다


창원 봉림산 아래 용동 못(지금은 국도 25선, 북창원역 공사로 연못 한 귀퉁이만 남았습니다.)에 가다 만났습니다.
경남도청, 경남지방경찰청 뒤로 올라가다 보면 길가에 탁자와 허름한 천막을 볼 수 있습니다. 천막에는 '유기농산물', '무인판매'라고 적혀 있습니다.

탁자 위에는 참박, 호박, 수세미, 결명자도 보입니다. 농약 묻혀서 키우지 않아 생기기도 못생겼습니다.

호박 1000원, 수세미 1만 원에서 반값으로 깎아 5000원, 참박 2000원, 결명자 한봉지 2000원. 1만 2000원이면 탁자에 놓인 물건을 싹쓸이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파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무인판매라고 써놓고 밭 매는 모양입니다.
탁자에 "돈은 돈통에 넣어 주시오"라고 적어놓고. 밭 입구를 막은 문에는 '요금함'이라고 써 붙인 돈통이 있습니다. 그곳에 돈을 넣고 원하는 물건을 가져가시라는 뜻이지요.


정말 '간 큰 농사꾼'입니다. 쌀시장 개방에 맞서 울며불며 아스팔트 농사지어서 만들어낸 '쌀소득 직불금'을 우려먹는 세상인데 뭘 믿고 저럴까 싶습니다.

어쩌면 이 땅을 일궈온 농사꾼의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을 믿지 않고, 사람을 믿지 못하면 어찌 그래 땅만 파며 살아왔겠습니까. 자신은 정작 속고 속아도 사람 입에 들어갈 음식으로 장난치면 벌 받는다며 정성스레 먹을거리를 키워냈을 뿐입니다.

혹, 그냥 가져갔다고 한들 '이 썩을 놈'하고 말겠지요. 맛있게 먹으면 그뿐이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그냥 슬쩍해간 이들의 생각은 다를 겁니다.

가져가다 잡히면 상품도 아닌 것을, 얼마 하지도 않는 것을 하면서 되레 성을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있는 놈들이 투기목적으로 논을 사놓고, 쌀 직불금까지 타 먹다 들켜 움찔하는 그 꼴일 겁니다.

그렇지요. 간이 크지 않으면 그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공무원, 고소득자가 농민들 주머니에 들어갈 쌀 직불금을 타 먹는 세상 어찌 견디며 살아내겠습니까. 이 땅에서 농사꾼으로 살아가기 참 어렵습니다.


'무인판매소'를 차려놓고 애써 길러낸 작물을 자랑스럽게 내놓은 그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눈에 선합니다.
 세상이 농사꾼을 배반하지 않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