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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이

쌍용차 해고자 아내 "지금 당신의 모습이 최고"


"함께 살자." 절박하고 애절하다. 요즘, 이 말처럼 가슴에 와 닿는 말이 있을까. 살기 어려운 시대여서 더 그렇다.

세상은 아직도 일하는 사람을 주인공이 아니라 하나의 기계 부속처럼 취급한다. 사람을 남기고 자르는 기준에는 '함께 살자'는 없다. 오히려 전체가 살려면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는 논리를 더 내세운다.

대한민국, 평택이라는 땅은 고립된 전쟁터다. 전쟁터에 남편과 아빠를 보낸 이들은 잠을 잘 수 없다. 먹지도 못한다.

창원 정우상가 앞 민주노동당 농성장에서 '함께 살자'고 외치는 쌍용차가족대책위원회 조현정(47) 씨를 만났다. 노동조합이 정리해고에 맞서 파업을 벌인지 67일째, 남편과 헤어진 날짜다. 고3, 중2 딸과 초등학생 아들, 단락했던 다섯 식구의 생이별도 벌써 두 달을 넘겼다.

그렇게 남편을 평택에 보낸 아내들은 손만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지난달 중순 가족대책원회를 꾸렸다. 평범했던 노동자의 아내들이 길거리에서 마이크 잡고 집회도 하고 홍보전단도 나눠주고 한나라당 도당 앞에도 섰다.

그녀는 상황이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단다. 요즘은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하루 1번 통화도 어렵다. "문자를 보내도 답장을 못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은 것 같아요. 하루 한 끼 주먹밥 먹을 시간도 없다고 해요." 그만 목이 멨다.

쌍용차 사태는 상하이 자본이 중국으로 철수하면서 파국은 시작됐다. 노동조합은 쌍용차를 중국자본에 매각하려 할 때부터 기술만 빼먹고 빠져나갈 것이라는 '먹튀' 경고를 했다. 그게 현실이 됐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정부도 노사간에 처리할 문제라며 방관자로 돌아섰다.

오로지 책임은 노동자에게 돌렸다. 법정관리신청이 받아들여진 후 사측은 2646명 감원계획을 '경영정상화방안'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대량 희망퇴직, 그에 이은 970여 명 정리해고. 노동조합은 평택공장에서 고용유지,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투쟁을 시작했다. 

창원공장 노동자 150명도 해고통지를 받았다. 6월 초 해고통지를 받던 날 손이 덜덜 떨렸다. 말만 듣던 '해고자' 낙인이 찍히던 날이다. 이렇게 살아남은 자와 잘린 자로 갈렸다. 사측은 '생존'을 미끼로 서로 싸우게 했다. 가족대책위는 남은 동료가 평택공장으로 가던 날 장미꽃을 들고 갔다. "도련님, 형수하고 지냈던 사이가 그렇게 변했어요.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뉘면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돼버렸습니다."

평택공장은 경찰이 투입된 지 8일째다. 물과 음식, 의료품이 끊겼다. 그녀는 "창원공장 사람들이 옥상에 있는데 최루액에 맞아 화상, 수포 부상이 많다고 해요. 물도 없으니 씻지도 못하고 약도 없고"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서러움은 이런 것이다. 사람에 대한 모독이다. "밤새도록 선무방송, 헬기 띄우고, 방패를 바닥에 치고, 고함지르고 공포심을 유발해 잠도 못자 게 합니다. 먹는 것도 막습니다. 살인한 죄인도 잠을 재우고 밥을 주는데 자기 일자리, 일터 찾겠다고 하는 데 물도 끊어 버립니다."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문자로 힘내라고 보내지만 힘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 말하는 게 남편에게 못 할 소리 하는 것 같아서요. 몸조심하고 오늘도 무사히 넘기기만 바랍니다."

그녀는 언론이 파국을 막아 달라고 부탁했다. 용산처럼 참사가 일어날까 두렵단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왜 경찰은 투입하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투다. 지금까지 파업으로 차를 몇 대 못 만들었고 손해가 얼마인지 중요한 모양이다.

그녀는 40여 년 살아오면서 알지 못했던 것을 지난 두 달여 동안 많이 깨달았다. "나 혼자 나선다고 되겠나 싶었는데 조그마한 마음들이 모여지면 이뤄질 수 있다고 느꼈어요. 내가 힘들고 아플 때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힘이 납니다." 1인 시위 하던 사람들도 새롭게 보인단다.

눈물을 찍어내는 그녀에게 힘들겠지만 남편에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지금까지 당신의 모습이 살아오면서 봐왔던 모습 중에서 최고로 멋진 모습이었어요. 우리 애들이 당신 그런 모습 보면서 바르게 올바르게 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돈 없고 가진 거 없어도 우리 아이들 정신 똑바로 박힌 아이로 힘 모아서 잘 키울 수 있을 거예요.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돌아와요. 사랑해요."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함께 살자'고 하고픈 사람이 이들뿐일까. 우리의 미래, 우리의 이야기다.